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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1-11 조회수 : 1585
11월11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루카 17,20-25
 
예수님께서 죽으셔야만 왕이 되시는 이유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주제입니다. 
찾아다닐 필요가 없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나라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명령이고 그 명령에 따르면 그 나라가 곧 하느님 나라입니다.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해 눈에 보이게 명령하고 지시할 수도 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면 그 지배는 불완전합니다. 
 
아이는 보통 부모님의 나라입니다. 
부모님의 뜻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않을 때는 아이는 부모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하기에 부담스러우면 자기를 지배할 누군가를 만들어냅니다. 
 
『벼랑 끝, 상담』에 이와 같은 예가 나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민서는 이혼한 엄마에게서 키워졌는데 엄마는 술과 담배에 찌든 밤을 지내는 생활을 하는
직업을 가졌습니다. 
결국, 민서는 아동보호센터에 넘겨졌고 그곳에서는 고등학생 언니들의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경찰 조사에 의해 다시 엄마에게 키워졌지만, 엄마는 여전히 민서를 보살펴 줄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민서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동보호센터에서 혼나지 않기 위해 시작된 거짓말이
엄마에게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민서를 도와준 것은 한 친구였습니다. 
진짜 사람은 아니고 환시로 자신만 보이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는 친한 친구인 척하면서 거짓말을 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처음엔 귀로만 들리던 음성이었는데 눈으로도 그 아이를 보게 되었고 이젠 그 아이의 말에 무조건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최고야 원장은 민서의 역할을 하고 민서는 자기에게 거짓말을 종용하는 환시의 아이 역할을 하며 역할놀이를 하였습니다. 
최 원장은 민서의 말에 따라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는 연극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보고 난 민서는 자신이 보는 환시의 아이가 착한 아이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삼자 측면에서 보니 그 아이는 자신을 망치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의 말을 무시하게 되었고 점차 환시도 사라지고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외부에서 눈에 보이게 나에게 명령하는 대상은 끊기가 오히려 쉽습니다. 
그 명령이 내 신의 판단을 거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1) 역시 자신이 만들어낸 환시들을 보며 결국에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존은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친구를 만들어내고 인정받기 위해 비밀 요원을 만들어내 그들에게 조종당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자신의 허상임을 알고 무시하며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갑니다.
이처럼 외부 조종자는 내부 조종자보다 힘이 약합니다. 
 
가장 강력하게 나를 지배하는 내부 조종자는 ‘나’입니다. 내가 ‘나’라고 믿는 대상이 실제로는 내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내 안에서 나를 지배하면 그것은 완전히 나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는 자신이 개인지 사람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나옵니다. 
22세의 의대생이었던 스티븐 D.는 약물중독으로 거의 완벽한 개의 경지까지 갔었습니다. 
 
개가 되는 꿈을 꾸었는데, 실제로 꿈을 깨고 나니 개의 모든 감각, 특별히 후각이 인간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게 된 것입니다.
모든 향수의 냄새를 다 구별하게 되었고, 환자들을 눈을 감고 냄새로 다 구별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자신이 간 길을 다시 냄새로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3주 동안 이 일을 겪고 나서 약물을 끊었고 나중에 신경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정말 나를 지배하는 것은 내가 ‘나’라고 믿는 대상입니다. 그 대상이 내 안에 들어오는 방법은 ‘감사’를 받는 것입니다.
내가 감사를 하면 그 대상은 점점 ‘나’가 되어갑니다.
부모에게 감사할 때 부모가 내 안에서 나를 지배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감사를 받으려면 필연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탈출기에서 잠깐 살펴보자면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산 위에 서 있고 여호수아가 아말렉족속과 전투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전에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바위에서 흘러나온 물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나는 진리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고 물은 은총으로서 사랑입니다.
이 사랑과 진리가 그 사람 안에 들어가면 그 사람 안에서 여호수아, 곧 예수께서 자아를 몰아내고 당신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이것이 가나안 정복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미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나의 ‘나’가 되어있는 자아를 밀어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나를 살게 해 준 나보다
훨씬 고마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나에게 살과 피를 양식으로 내어주는 부모처럼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늘 복음에 당신이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리아 고레띠 성녀의 예를 다시 보겠습니다. 
10살을 갓 넘은 성녀는 20살 난 청년인 알렉산더에게 겁탈당하려는 것에 저항하다가 수십 차례 칼에 찔려 사망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무려 20시간 동안의 큰 임종 고통을 겪으면서도 어머니를 위로하고 가족을 걱정했습니다. 
 
종부성사를 주시는 신부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강도에게 하듯이 너도 살인자를 용서하겠느냐?”
라고 물었을 때, “예, 신부님 그를 용서합니다. 하늘나라에서 그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겠어요.
그 사람도 저와 같이 낙원에 머물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숨을 거두기 전, “어머니, 아름다운 부인이 서 계신 것이 보여요.”하고 말했습니다.
 
알렉산더는 30년 형을 받고 감옥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완강하게 저항하였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고레띠는 그의 꿈에 나타나 그에게 백합꽃을 전해주었고 그 환시를 본 후 알렉산더도 회개하였습니다.
형을 다 마치고 나와서는 먼저 고레띠의 어머니 아쑨따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죄를 청했습니다.
어머니는 “마리아 고레띠가 너를 용서했으니 나도 너를 용서한다.”라고 하며 함께 영성체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이후 카푸친 수도원의 정원사로 나머지 생에 대해 속죄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죽기 얼마 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릇된 길을 가는 모든 젊은이에게 청합니다. 나처럼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게으름에서 도망치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내가 찌른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의 양식이 되어 줄 때 그 사람은 내 안에서 주인이 됩니다.
그 사람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마리아 고레띠의 나라입니다. 
그를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가슴까지 지배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하느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나를 당신의 나라로 만드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위해 피를 흘려 이웃을 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 나라는 눈에 보이는 나라일 수 없습니다.
그 주인이 마음 안에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안에 사는 방법은 살과 피로 먹히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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