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신부가 되고 나서 수영을 배웠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배우는 수영이기에 쑥스러움이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실력이 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발차기를 해도 앞으로 가지 않고, 또 왜 이렇게 물을 많이 먹게 되는지…. 그럼에도 수영 강사에게 묻지 못했습니다. 쑥스럽기도 했지만, 그저 열심히만 하면 잘할 줄 알았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새로 왔습니다. 저 못지않은 초보였습니다. 그런데 강사에게 계속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 물음에 강사는 아주 친절하게 또 쉽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저와 몇몇은 강사가 여자 수강생만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은 것 같았으니까요.
계속 강사에게 물어보던 이 자매님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늘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 만에 중급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중급반에 가서도 그곳 강사에게 계속해서 수영에 관해 물어보는 것입니다.
실력의 차이는 ‘혼자’와 ‘함께’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늘 주변과 소통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실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혼자서 높은 경지의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특히 주님과 또 이웃과 함께해야지만 가능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세속을 내쫓는 성전정화의 행동과 유대인 지도층과의 논쟁을 볼 수 있습니다. 파스카 축제에 맞춰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몰려듭니다.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바치니, 사람의 수만큼 동물이 성전 주위에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동물시장처럼 북적였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경배하는 성전은 완전히 시장터로 변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제물용 동물을 사려면 돈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환전상들 또한 들끓었습니다. 종교적인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당시에 성전은 재건 중이었기에, 공사판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모습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채찍을 휘두르고, 탁자를 엎어 버리는 폭력 행위를 하십니다. 이 모습이 유다인들과의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행동에 잘못된 것이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동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적대적으로 대합니다.
올바른 것을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 자기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또 자기의 편함을 위해 올바른 것을 잘못된 것으로 표현하기도 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며 올바르게 살지 못하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분명히 가만히 있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회개하고 주님의 뜻에 동참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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