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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7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1-07 조회수 : 1237

듀크 대학교 교수 새러 가이더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폭넓게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재밌는 친구, 공을 잘 던지는 사람, 케첩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다양한 존재인지 생각하는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창의성이 향상되었음을 이 작업을 통해 분명히 보여줍니다. 

창의성 향상은 아이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요즘 치매에 관한 관심들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치매로 가족들의 어려움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치매 예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늘 사고하며 뇌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뇌 세포를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서 새러 가이더 교수의 ‘자신이 누군지 폭넓게 생각’하게 하는 방법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뇌 건강을 위해, 함께 사는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한 작업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한 가지 더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과연 하느님께 어떤 존재입니까? 특히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합니까?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다양한 모습 모두를 사랑해주십니다. 세상의 눈으로 사랑의 이유를 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랑받을 이유를 찾지 못하면서 지금을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예루살렘 성전에는 성전 세와 십일조 세를 받아들이기 위한 성전금고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헌금이 오늘 복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부자는 많이 넣고 가난한 이는 조금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부자는 드러내는 봉헌을 위해 많이 넣었던 것이고, 가난한 이는 상황이 어려워서 조금만 넣었습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드러내기 위한 봉헌이기에 하느님께 바치기보다는 자기에게 바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가난한 과부는 렙톤 두 닢을 넣었습니다. 이는 노동자 하루 품값의 64분의 1에 해당하는 보잘것없는 돈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헌금을 받을 때 돈의 액수를 따지지 않고 그 바치는 마음을 헤아리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적은 액수라 할지라도 봉헌하는 마음 자체가 사랑받을 이유였습니다. 세상의 눈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모습이지만, 하느님께서 인정하는 모습이 됩니다.

남에게 드러내기 위하여 헌금하는 부자가 많은 돈을 내는 마음 그리고 가진 것을 몽땅 털어서 하느님께 바치는 가난한 이의 마음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어떤 헌금을 기쁘게 받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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