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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1-06 조회수 : 1378
11월6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루카 16,9ㄴ-15
 
돈의 집착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오늘 복음도 어제 복음의 연속입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려면 재물이 주님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재물을 나의 것으로 여기면 나는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과 경쟁하는 사람이 됩니다.
주님 것을 나의 것으로 삼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친구도 사귀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의 특징은 돈을 좋아한다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과 경쟁하며 하느님을 섬기겠다는 모순된 길을 가려는 사람들입니다.
돈을 좋아하면 율법을 아무리 잘 지켜도 우상 숭배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돈 좋아하는 자기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종이 됩니다. 
여물을 먹으면 밭을 갈아야 하는 소가 됩니다.
그래서 돈 좋아하면 주님을 섬긴다는 말은 우상숭배를 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진정한 우상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들은 바뀌지 않을까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변호사에게 80대 할머니가 이혼소송을 하러 왔다고 합니다.
자녀가 나으면 바뀔까, 자녀가 결혼하면 바뀔까, 나이가 들면 바뀔 줄 알았는데 여든이 넘어서도 자신의 친구와 할아버지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송봉모 신부님의 강의에 이런 예도 있습니다.
어렸을 때 자신을 성추행한 아버지를 신앙을 가지고 용서하였다고 합니다.
딸 아이를 낳고 큰맘 먹고 아버지를 집에 초대하였는데 그 아버지가 자신의 딸도 추행했다는 것입니다.
딸의 상처를 알고 딸의 용서를 받은 아버지이지만 손녀딸까지 추행한 것입니다.
정말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닌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라고 합니다. 고치지 말고 주인을 바꿔야 합니다. 
그러면 고쳐집니다.
문제는 내 안의 주인 때문입니다. 
행동을 이해시키고 변화시키려 해서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벼랑 끝, 상담』의 또 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한 어머니가 청년 여자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 청년은 쓰레기를 버리지도 못하고 샤워 물을 내리지도 못합니다. 
심지어 변을 닦은 화장지도 버리지 못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유치원 때부터 어머니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때부터 어머니는 남편이 접대부와 외도를 한 사실을 알고는 보복하는 마음으로 줄곧 여러 남자를 만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남자에게 보낼 나체사진을 딸에게 찍어달라고 한 것입니다. 
심지어 딸을 데리고 다니며 그런 짓을 하고 다녔습니다.
 
딸은 자신을 그런 공범자로 만드는 엄마도 싫었고 그런 것도 모르는 아빠도 바보처럼 여겨졌습니다. 
어쨌건 딸이 그런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만드는 강박증을 만든 것은 자신도 어머니와 공범이라는 죄의식입니다.
죄의식이 강하니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죄의식을 극복하려 한 것입니다.
이것도 자존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더러운 물을 내려보내지 않기 위해 샤워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무너진 윤리의식을 회복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그런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사라지게 할 정도로 인정해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최 원장은 명상최면치료를 통해 어머니의 부정한 행위들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하고 먹물로 칠하여
불에 태워버리는 명상을 자주 시켰습니다. 
점점 나쁜 기억들이 사라졌지만,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강박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런 명상을 시켰습니다. 
양손에 나를 더럽다고 질책하던 자아와 그건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하는 두 자아를 쥐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더럽다고 하던 자아에게 잘 말해서 우주 밖으로 떠나버리라고 한 다음 오른손에 있는 자아를 가슴에 집어넣었습니다. 
나의 주인을 바꿔주는 것입니다. 
 
만약 가톨릭교회를 믿었다면 고해성사로 나를 질책하던 자아를 벗어던지고 성체성사로 그리스도를 참 주인으로 모셔 나의 주인이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그리스도로 믿게 되면 다 해결될 일입니다.
 
그러나 종교가 없다면 더 나은 자아를 주인으로 넣어주어 믿게 만다는 명상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청년은 이전의 자아가 사라지고 죄책감 없는 새로운 자아가 자신의 가슴에서 주인이 되어 살게 된 것을 믿게 되어 강박증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바뀔 때는 내 안의 주인이 누구냐는 믿음이 바뀔 때입니다. 그전에는 바뀌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할 때, “저는 그리스도입니다.”라는 대답을 하거나 그와 비슷한 대답을 할 때 그 사람이 변했다고 믿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안의 주인이 누구냐는 믿음에 따라 욕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늑대라고 믿으면 날고기를 좋아하겠지만 내가 사람이라 믿으면 요리가 된 것을 먹는 편을 좋아할 것입니다.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욕구입니다. 
욕구가 바뀌어야 사람이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욕구는 내 안의 주인이 누구냐는 믿음에 따라 결정됩니다. 
 
뉴스에 보니 베트남 다낭의 한 청년이 14억 슈퍼카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12cm 돌연변이 난초를 교환했다고 합니다.
분명히 이 사람은 나중에 이 난초가 14억보다 더 높은 가격의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을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14억짜리 차를 별 볼 일 없는 물건처럼 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느님이라고 믿고 사는 것의 가치를 안다면 나를 가차 없이 버릴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냐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서는 절대 내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느님으로 살 때, 그래서 물 위도 걸을 수 있는 존재라고 믿을 때 나는 변합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고쳐 쓰려 하십니다. 
성체로 하나가 되었다고 믿게 하심으로써 말입니다.
돈 좋아하는 마음은 돈 안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꿔야만 사라집니다.
그 마음이 성체로 들어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체를 영한 사람은 돈 안 좋아하는 마음을 주인으로 모신 성전과 같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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