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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11-05 조회수 : 1408

 
불의한 재물로만 친구를 사귈 수 있다
 
오늘 복음도 역시 ‘회개’에 관한 내용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집사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이것을 알고 집사를 내보내려고 합니다.
이것을 안 집사는 주인의 재산으로 자신이 쫓겨났을 때 맞아들일 친구들을 사귑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결론지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루카 16,9)
 
집사가 친구를 사귀기 위해 사용한 재물은 의롭지 못한 재물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재물이 아니라 주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불의한 재물로만 친구를 사귈 수 있습니다. 
 
하와도 자신이 가진 선악과로 아담을 사귀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내어줌은 죄를 퍼뜨리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 이유는 선악과를 ‘나의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나의 것을 내어줄 때가 아니라 주님의 것을 내어줄 때 만들어집니다.
나의 것을 내어주면 언제나 그에 합당한 무언가를 요구하게 되고 그러면 친구가 아닌 거래처가 생기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나를 받아 줄 사람은 거래처 사람들이 아닌 부정한 재물로 사귄 친구들입니다. 
 
초대 교회는 가진 재산을 공동소유하였습니다.
재물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것을 주장할 수 없었고 그들은 친구요 가족이었습니다.
이 공동체에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의롭지 못한 재산으로 친구를 사귀게 됩니다.
이렇게 행복한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고 수많은 이들이 이 공동체에 들어오려고 하여 그 수가 날로 증가하였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약삭빠른 청지기를 수없이 만들어내는 것이 교회의 역할인 것입니다.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2009)은 한 청년이 돈의 노예였다고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사람으로 각성하는 과정을 그린 실화입니다.
1969년 뉴욕주 한적한 시골 부모님이 파산 직전에 놓여 전 재산인 모텔을 넘겨야 하는 처지가 된 엘리엇은
고민에 사로잡힙니다.
누나는 돈만 밝히고 괴팍한 성격의 어머니를 떠나 독립하였고 동생에게도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꿈을 좇으라고 하지만 동생은 부모님의 희망이 자신뿐이라 떠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마을 상인 협회 회장을 맡아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던 중 이웃 동네에서 열리기로 한 ‘록 페스티벌’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그것을 유치해 부모님의 힘겨운 재정난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마을 사람들을 설득에 나선 엘리엇은 우여곡절 끝에 페스티벌을 유치하는 데 성공합니다.
 
수천 평의 농장을 축제 장소로 제공하고, 부모님의 낡아빠진 모텔은 페스티벌의 공식 숙소가 되며
난생처음으로 마을에는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게 됩니다.
어머니는 그 와중에 주차비까지 다 챙겨가며 돈을 긁어모읍니다. 
 
점점 많이 몰려드는 히피족들과 친분이 생기던 차에 엘리엇은 그들이 준 대마초를 피우고 광고 방송에서 헛소리해버립니다.
페스티벌도 공짜고 음악도 공짜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국, 고요하기만 하던 마을에 무려 50만 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몰리면서 아수라장이 됩니다.
 
히피족은 본래 베트남전 패전을 본 20 30 세대들이 기존 어른들의 경쟁과 성공 문화에 저항하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자고 생겨난 하나의 불같은 문화였습니다.
엘리엇은 그들 공동체를 보며 무언가 각성하게 됩니다.
 
그는 어머니가 호텔을 넘기지도 않아도 되는 만큼의 돈이 있으면서 자신을 이용한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돈의 노예가 되는 길을 겪고 있었고 50만 명이나 되는 자유로운 공동체 안에 있으며 비로소 이 길이 이상한 삶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돈에 얽매이는 삶이 아닌 히피들처럼 자신의 꿈을 찾고 친구를 사귀는 삶으로 나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엘리엇은 자신이 만난 친구들, 그 수많은 같은 자유를 갈망하는 자신과 같은 젊은이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서로 나누고 자유롭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공동체였습니다.
 
만약 한두 명이 그러면 큰 변화를 겪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과 대조되는 50만 명의 공동체는 이제 돈이 그의 것이 아닌 친구를 사귀는 도구로 볼 수 있는 눈을 선물해 준 것입니다. 
 
교회도 이와 같은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라헬은 아버지 라반으로부터 도망치면서 아버지의 우상을 낙타 위에서 깔고 앉았습니다.
라반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가 섬기는 우상은 돈입니다.
야곱과 결혼한 라헬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돈을 엉덩이로 깔고 앉았을 때 교회는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본래 주님 것이기에 의롭지 못하게 사용하는 것들입니다.
이것으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교회는 다른 이들도 자기 것을 주장하며 노예 생활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교회가 정당하게 일하여 번 돈은 자기 것이라고 가르치면 더는 세상에서 매력을 발산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완전히 돈에 대해 자유로운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십일조를 강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십일조는 나머지 십의 구도 주님의 것임을 깨닫게 만들어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의롭지 못한 재물임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졌다고 믿는 모든 것이 어차피 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 정신이 죽으면 내가 가진 것이 나의 것이라 믿게 되고 그러면 세상에 대한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 것이라 믿으면 십일조를 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바칠 수 있었을 때 그들이 나누는 재물은 진정 그들을 친구로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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