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첫째 미사."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 4)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가
다시 만나는
기억의 신비이다.
잡으려고
애쓰지만
그 어떤 것도
잡을 수 없는
우리들 삶이다.
그러기에
구원을
갈망하는
우리들 인격이다.
인격은 사랑을
지향한다.
하느님 사랑이
생명의
창조이며
인격의
죽음이며
부활이다.
우리에게는
인격을
살리시는
하느님이
계신다.
죽음을
위로하시고
따뜻이
안아주시는
하느님이시다.
예외없는
죽음은
우리존재의
적나라한
본모습이다.
하느님 아니시면
어찌할 수 없는
가난한 실존이다.
삶을 부정하는
것은 죽음또한
부정하는
것이다.
죽음이란
우리모두가
하느님께로
돌아 가야 할
생명의 질서이다.
생명은
하느님의
고유한
영역이다.
사랑을 느끼는
사랑의 시간이
생명이다.
생명은
십자가를 통해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죽음으로
십자가를
얻는 것이다.
십자가는
죽음처럼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을
끝까지 믿으셨다.
죽음이 있기에
구원이 있다.
기억하며
기도한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이
하느님의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사실은
우리모두가
하느님을 향해
오늘도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순서와 시간의
차이일 뿐이다.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며
다시금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지를
깨닫게되는
위령의 날이다.
맑고 행복한
죽음이란
끝없는 하느님
사랑에 감사하는
것이다.
지나가야 할
죽음의 여정이다.
우리를
받아주시는
아버지 하느님이
계신다.
다시 함께 할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기억과
기도 사이에
삶과 죽음
우리의
구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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