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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11-01 조회수 : 1732

기도의 지향에 따라 성인도 되고 악마도 된다.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특별히 일 년 동안 지켜주시고 기도해주신 저희 자신들의 주보 성인께 감사드립시다. 
 
오늘 복음은 진복팔단입니다. 
성인은 행복하신 분들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행복하려면 마음이 가난해야 하고, 슬퍼해야 하고, 온유해야 하며, 의로움에 주려야 하고, 자비로워야 하며, 마음이 깨끗해야 하고, 평화를 이루고, 박해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단어로 통합하자면 ‘어린이’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
 
영성이란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일을 말합니다. 주님께 더욱 나아갈수록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기도’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기도가 그 사람을 더 큰 어른으로, 더 하느님과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한 번은 본당에 있을 때 한 사목회 위원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물론 누구인지 알게 하지 않기 위해 구체적인 인적사항은 바꾸었습니다.
약속도 하지 않고 와서는 신부님을 꼭 만나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전화를 받고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상담해 드리러 내려갔습니다. 
 
그 형제의 얼굴은 화가 잔뜩 나 있는 듯했습니다. 아들에게 화가 나 있었습니다.
사실 모든 것에 화가 나 있는 듯도 했습니다.
저를 찾아온 이유는 나중에 아들과 면담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재수생인데 그 착했던 아들이 어느 날부터 반항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봐도 말도 안 하고 문을 걸어 잠그기도 합니다. 
언제부턴가 학교도 빠지고 방에서 게임만 합니다.
게임 하느라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문을 꽝 닫아버리길래 키보드를 부신 적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날은 잔소리 좀 했더니 아버지 앞에서 거울을 주먹으로 쳐서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손에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성당에서 복사도 하고 착실했던 아이가 그렇게 되어서 신부님이 말씀하시면 들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십계명에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이 있으니 말입니다. 
 
아버지는 본당에서 열심한 신자입니다.
성경도 1년에 1번 이상은 통독하는 분이고 묵주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세상 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수억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었고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사람입니다.
그 아이의 형은 그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형도 전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일류대 의대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째가 문제입니다. 
그분은 기도하는 중에 환시와 같은 것을 본다고 했습니다. 성당에 앉아있으면 예수님께서 나타나 위로도 해 주시고 미래의 이런저런 일을 알려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하면 하는 일도 잘 풀리는 기적을 많이 겪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성공한 것은 순전히 기도 덕분인데 둘째 아들을 위한 기도만은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부터 이분의 영성이 의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형제는 자신의 세속적인 것들을 기도로 채우고 심지어 기도로 자신도 커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기도를 잘해서 가정이 이만큼이나 사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현재 상황이 안 좋아진 것도 자신이 그런 환시를 따르지 않은 벌이라고 여겼습니다. 
 
일단 저는 아들에게 무슨 잘못한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마 비싼 고시원에 넣어달라고 했는데
형 등록금 때문에 안 된다고 한 것에 화가 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지금 아파트를 더 큰 곳으로 옮기고 사업을 확장하느라 빚까지 져서 조금 돈이 달리는 때인데, 공부도 못하는 아들이 너무 비싼 기숙학원을 원하기에 안 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저는 아들이 아버지와 말을 안 하는 이유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가난해서 라면만 먹은 적도 있고 맨밥만 먹은 적도 있으며 어머니 잠바를 입고 학교 다니고
돈이 없어서 공책도 사지 못한 경우도 많았지만,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형제님은 약간 당황한 듯 보였습니다. 물질적으로 자녀에게 충분히 못 해 준 것 때문에 자신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아들을 위해 하느님께 이렇게나 기도를 열심히 하고 물질적으로도 사실 남들보다 잘해준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으니 알아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우선 위원장님께서 하시는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내 의견을 주님께 관철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뜻이, 그것이 비록 내 뜻과 맞지 않는다고 해도 다 받아들일 힘을 키우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님은 기도를 통해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셨습니다.
더군다나 하느님의 자유뿐만 아니라 아들의 자유까지 인정해주지 않고 많은 것을 강요하셨습니다.
아들이 이미 성인이 되었는데도 아들의 인생에 간섭하고 계십니다.
아들이 말을 안 하겠다면 이젠 성인이 된 아들의 결정을 인정해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나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들고 싶은 근본적인 이유는 형제님께 열등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열등감을 기도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느님도 형제님에게 이용당하는 소와 같이 됩니다.
여물 줄 테니 밭 갈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앞에서 하느님도 자유를 빼앗기십니다. 이것을 우상숭배라 합니다.
 
형제님이 이렇게 된 데에는 어렸을 때 어떤 상처를 받았거나, 혹은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 자존감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돈과 명예로 나의 부족한 자존감을 극복하려 합니다.
아마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으려 했지만 인정해주지 않으신 상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과 가족들을 이용해 낮은 나의 자존심을 세우려 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그러지 않습니다. 
부모님으로 충분합니다.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어른은 하느님 앞에서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해 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가족들의 자유도 빼앗습니다.
자녀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아버지의 뜻이 강하기에
아마 자녀들의 많은 것을 간섭하실 것입니다.
 
가장 큰 도둑질이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유를 빼앗길 때 물건처럼 됩니다.
아드님은 이것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인정해주십시오.
둘째는 첫째 아들처럼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입니다. 기도하실 때 어린이처럼 되려고 하셔야지,
계속 하느님 앞에서 어른이어서는 안 됩니다.
당분간 나의 뜻을 하느님께 주장하기보다는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청하시고, 아드님에게도 생각할 수 있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찾아갈 자유를 주시는 것은 어떠신가요?”
 
이렇게 말씀드리니 얼굴이 좀 더 일그러지셨습니다. 
“네, 다 제 탓이죠. 저는 아들이 제 말을 좀 잘 듣고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설득해 달라고 신부님 찾아온 것인데.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더 기도해야겠네요.”
 
저는 마음속으로 이 형제가 기도의 지향을 바꾸기를 기도했습니다.
기도로 자신이 더 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모르며 기도하면 기도가 그 사람을 더 악하게 만듭니다. 
 
세속-육신-마귀는 사춘기 때부터 급격히 증가합니다.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것들을 청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기도를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것들에서 벗어나 더 어려지기 위해 바치는 것입니다. 
 
어려질수록 하늘 나라에서는 더 큰 성인입니다. 어려질수록 하느님께서 아버지시기에 내게 없던 자존감이 넘쳐납니다.
그리고 그 자존감의 수준이 곧 나의 행복의 수준이 됩니다. 
 
이와 상반되는 사례로 독일 루르 한인성당의 고정아 막달레나 자매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글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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