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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3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0-31 조회수 : 1506

창조자만이 당신을 위해 목숨 바쳐 사랑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는 하느님의 계명 중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이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하십니다.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이 창조한 모든 것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계명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이 해답은 ‘왜 살아야 하는가?’와 일맥상통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은 묻다 지쳐서 ‘그냥’이라는 해답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중년에 들어서면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생각도 하고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삶에 공허함도 느낍니다. 
 
우리가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해답을 지금까지 명확하게 주는 인물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역사상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인류 최초의 소설이라는 ‘길가메시 서사시’가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주인공 길가메시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돈도 많고 힘도 세고 나라도 다 정복한 영웅이었습니다.
이 영웅이 언젠가 징그럽게 생긴 훔바바(Humbaba)라는 괴물과 싸우게 됩니다. 
물론 길가메시가 승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엔키두라는 친구가 죽습니다. 
 
길가메시는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자신도 언젠가 죽을 운명임을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가 이렇게 유명하고 성공하고 돈과 권력이 많아도 죽으면 다 의미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먼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게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생하고 고생해 결국 어느 먼 곳에 우트나피슈팀이라는 아주 유명한 산신령 같은 분이 계신데 그분은 죽음을 초월하였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를 찾아간 길가메시는 그가 어떻게 불사신이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우트나피슈팀이 대답합니다. 
 
“나는 신들에게 잘 보여서 불사신이 되는 약을 하나 선물 받았는데 그것을 먹었더니 불사신이 되었소.” 
길가메시는 “저에게도 그 약을 하나 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랬더니 그 노인은 약을 줍니다. 
 
길가메시는 기분이 너무 좋아 그 약을 놓고 연못에서 목욕했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구렁이가 나타나서 그 약을 훔쳐 가버립니다. 
이 약이 없으면 죽음으로 모든 게 무의미해지는데
뱀이 훔쳐 가버렸으니 엉엉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가메시는 다시 우트나피슈팀에게 가서 약을 하나 더 줄 수 없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약은 한 번밖에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길가메시가 묻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제 죽어야 합니까? 적어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십시오.”
우트나피슈팀은 말합니다. 
 
“그냥 집에 가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아름다운 여자와 데이트하고 맛있는 거 먹고 친구들과 술 마시면서 재미있게 놀아라.”
그런데 그 모든 것은 길가메시가 지금까지 해오던 일이었습니다. 
이게 이야기의 끝입니다. 오천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뭔가 잡힐 것 같은데 잡히지 않는 삶의 의미에 관한 의문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것은 우트나피슈팀이 길가메시에게 주었던 그 약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신들이 줄 수 있는 바로 그 약, 그것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만든 모든 것들을 사랑하라.’라는 계명입니다.
우리에겐 그 계명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서 사탄이라는 뱀, 혹은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그 계명의 중요성을 잃습니다. 
그래서 또 그냥 생존 욕구대로 살아갑니다. 
 
생존 욕구는 그냥 태어날 때 생존을 유지하게 하려고 넣어진 욕구이지 삶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불사의 약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돈 더 많이 벌고 더 맛있는 것 먹고 더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인생을 허비합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약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창조하신 대상들을 사랑하라고 하는 계명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잘 생각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삶의 의미는 창조자만이 줄 수 있는데, 창조자가 아니시면 우리에게 그런 계명을 주실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욕구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은 누구에게도 생존을 포기하라는 욕구를 줄 수 없습니다.
혹시 누군가에게 그런 욕구를 주면서 자기까지 사랑하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은 생존을 포기하라는 사랑의 욕구를 줄 수 없다?
일본 천황은 가미카제 특공대에게 나라를 위해 죽으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분명 천황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라는 명령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황이 양심이 있다면 그들에게 진정 자신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요?
자기가 창조하고 다시 생명도 줄 수 없는 이들을 자살로 내몰면서 자기를 사랑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라면 그런 명령은 내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은 피조물에 다시 생명을 줄 수 없어서 자신이 피 흘려 창조한 무엇이 아니면 자신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줄 수 없습니다.
타인의 생명을 이용하면서 자기를 사랑하라? 이것은 마귀만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나마 자신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줄 수 있는 분들은 부모님입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의 창조를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당당히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합니까?
항상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부모를 공경은 해야 한다는 말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자녀를 창조하기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의 영약을 먹은 사람들입니다.
삶의 의미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영약을 주신 분은 나를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 죽어서 어떻게 되는지도
책임지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나를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신 분께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 뜻대로 이웃을 사랑하며 목숨을 바친 당신 자녀에게 다시 생명을 주시지 않을 리 없습니다 
이 계명으로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오직 창조자만이 당신과 당신이 창조한 것들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임을 명심하고, 그분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시다.
그리고 그 영약을 절대 뱀에게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그래야 모든 삶이 의미로 가득 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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