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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3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0-30 조회수 : 1530

진정한 교리는 가난한 이들에게서 살아난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안식일에 관한 교리의 오류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율법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어도 되는지, 되지 않는지조차 대답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유다인들이 왜 바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관해 설명합니다. 
 
먼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교만’에 대해 지적하십니다.
예수님은 유다인들이 식사 자리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하는 것을 비판하십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교만이 그들에게 주어진 교리까지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가난한 자’들을 초청하라고 하십니다. 
부자끼리 어울리니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가난한 자들에게 다가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교리가 어려워집니다.
교리가 어려워졌다는 증거는 ‘비유와 상징’의 뜻을 잊어버리고 이론적으로만 가르친다는 것에서 증명됩니다.
사실 진리는 부유하고 배운 이들을 향할 때 그 생명력을 잃고, 오히려 가난하고 철부지 같은 이들을 통해 생명을 얻습니다. 
 
최고야 상담가의 『벼랑 끝, 상담』 첫 사례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처음 최 원장은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주고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에 큰 괴리감과 피곤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며 미술치료와 명상최면 등을 접목하여 내담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퇴근하려고 길을 나서는데 한 남자가 최 원장을 막아섰습니다. 
최 원장은 여성입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상담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최 원장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예약을 잡아주겠다고 했지만, 그 청년은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어진다는 것입니다. 
 
최 원장은 아무도 없는 상담실에 그 사람을 맞아들였습니다.
그 사람은 신문지에 쌓인 칼을 최 원장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최 원장은 이미 자신을 찾아왔다면 희망이 있다고 여기고 무섭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지금 지하철로 마구잡이로 사람을 찌르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도망쳤고 아버지는 심한 구타로 아이를 키웠습니다.
아버지는 물이 나오지 않는 옥탑방이기에 어쩔 수 없이 변을 집 안에다 볼 수밖에 없었는데 4살짜리 아이를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누나는 가출했지만, 그 청년은 아버지를 견뎌냈습니다.
아버지는 동네 형들과 싸움을 시켜서 이기지 못하면 또 때렸습니다.
그렇게 그 청년은 대인기피증을 넘어서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없는 정도까지 이르렀고 특별히 엄마 때문에
여자들을 증오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를 구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는 이렇게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잘도 살아가는 것이 너무 싫어서 참다 참다 칼을 들고 나섰는데
상담실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잠깐 멈춰 섰는데 원장이 나왔던 것입니다. 
 
최 원장은 돈이 없는 이 청년에게 돈을 받지 않고 상담을 해주겠다고 하고 자신이 아는 모든 치료방법을 써서 도와주었습니다.
특별히 그림 그리기를 하고 그 그림을 최면상태에서 태워버리거나 다시 액자에 끼우는 등의 상징기법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비유는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청년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여자와 영화까지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접하면 어떨까요? 누군가가 상담에 대해 이론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홍보하는 것보다
최고야 원장이 하는 상담실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더 생길 것입니다.
교회가 진정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렇게 이미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못 배우고 가난한 이들의 변화를 통해서 증명됩니다.
 
어렵게 교리실에서 가르치는 것이 교리가 아니라 그들의 새로 태어남이 곧 교리 자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고 철부지들에게 진리를 드러내 보이신다는 말씀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저는 꾸르실료 교육을 받게 된 것이 유학에서 돌아와서 본당의 주요 봉사자들이 모두 꾸르실리스따들임을
알게 된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일을 하려면 우선 인정을 받아야 할 텐데 그 방법은 저도 꾸르실료를 받는 방법밖에 없다고 느낀 것입니다. 
 
하지만 3박 4일간의 꾸르실료 교육은 저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방금 신학박사를 따고 온 사람에게 평신도들이 알려주는 교리와 영성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고 심지어 틀린 것도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꾸르실료 지도신부를 맡고 있고 할 수 있다면 전 신자들이 다 꾸르실료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많은 피정과 교육을 받은 사제에게는 재미가 없을망정 들어온 대부분의 신자분은 큰 깨달음을 얻고 많이 배워서 나가고 하느님을 체험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꾸르실료가 사제나 수녀님들에게 맞추어져 있다면 그 가르침이나 교육 내용이 나무 고차원적이라 오히려 평신도들은 그 안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점점 내용이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꾸르실료 운동은 그 맛을 잃게 되고 점점 사그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꾸르실료 기본사상 책에는 교회에 열심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교회에서 떠난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하라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교리가 매력 있으려면 그 내용이 많이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유가 사용될 수 있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습니다.
너무 고학력자들을 위한 교회가 되면 교리가 어려워지고 실생활과 괴리된 교리를 가르쳐 결국 인도의 불교처럼 일반 사람들에게 외면받게 될 것입니다. 
 
저에게도 감사한 일 하나는 부모님이 온전한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머니는 아예 학교에 입학해보지도 못하셨고 아버지는 초등학교 수준만 공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장하였을 때는 말을 할 때 그분들의 수준에 맞추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이 어려운 교리를 쉽게 설명하게 만드는 훈련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대학을 나온 부모님들을 만났다면 저의 강론은 일반인들이 듣기에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매력을 잃습니다. 
매력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유다인들이 안식일 교리를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 것처럼 교리가 변질합니다.
 
우리 교회는 끊임없이 진리를 보존하기 위해 가난한 이들과 못 배운 이들을 최우선으로 선택하는 자세를
바꾸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 안의 진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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