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이 우리 삶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를 과학자들이 정말로 그런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일기를 쓰게 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집단에는 감사함을 느낀 것들을 기록하게 하고, 두 번째 집단에는 귀찮거나 짜증 났던 것들을 기록하게 했습니다. 이제 어떤 집단의 스트레스가 더 높았을까요? 두 번째 집단이었습니다. 감사를 기록한 집단의 스트레스 수준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현저하게 낮았습니다.
이런 실험도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고 이야기하는 대학생들을 모았습니다. 이들은 불면증으로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지요. 이들에게 잠들기 전 15분 동안 감사하는 것들을 목록으로 작성하게 했습니다. 이 감사일기가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학생들의 복잡한 생각을 풀어 주었고, 숙면을 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감사는 이렇게 과학적으로 볼 때도 자신에게 이롭습니다. 그런데도 감사의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사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자리에 다른 감정이 밀고 들어올 수 없다고 합니다. 당연히 긍정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율법 교사, 바리사이들이 있는 곳에 수종병자가 나타났습니다. 이때 이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안식일은 거룩한 날로 부정한 사람과 접촉하면 자신 역시 부정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낼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런 질문을 던지셨던 것이 아닐까요?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율법의 근본정신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가 된다면 오히려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 교사, 바리사이들은 자신의 부정함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 수종병자를 고쳐 주지 않아도 뭐라고 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안식일에 어떤 치유행위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먼저 생각하시고, 사랑을 먼저 실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다른 생각보다 먼저 사랑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런 사랑의 주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 대한 감사 이유를 찾으면서 자기 자신의 이로움도 간직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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