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섬김을 통한 구원
[말씀]
■ 제1독서(이사 53,10-11)
유배시대 동안 익명의 예언자 ‘제2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궁극적 구원은 무력을 행사하는 어떤 해방자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이를 선포한다. 예언자는 사랑으로 자기 목숨을 내 놓는 ‘종’, 사람들이 자기의 잘못을 알아보고 고백하도록 이끌며 그들을 악으로부터 구하는 ‘종’이라는 놀랍고 당황스러운 존재로 구원자를 묘사한다. 바로 이 인물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 제2독서(히브 4,14-16)
예수님은, 사제 개념의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유일하며 완전한 사제이시다. 그분의 제물은 외적인 예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몸이며, 당신의 몸을 십자가상 희생제물로 바쳐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이루신 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 삶에 참 의미를 부여해주셨고, 십자가의 시련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진정한 관계에 들어서신 분이다.
■ 복음(마르 10,35-45)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몰이해가 다시 한번 주제로 등장한다. 예수님은 ‘섬김’을 생각하고 계시나, 야고보와 요한은 물론 다른 모든 제자는 ‘권세’를 떠올리고 있다. 예수님은 시련 속에서 드러날 사랑을 말씀하고 계시나, 제자들은 영광스러운 개선의 순간만을 연상하고 있을 뿐이다. 제자들은 이제 시련을 통해 새로 태어남으로써 이러한 망상을 벗어나, 주님의 섬김과 사랑을 익히고 실천하는 ‘종들’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새김]
■ 우리 자신 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당한 고통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종종 ‘하느님의 능력’이 그 고통을 없이 하거나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세상이 잘못되어 이런 부당한 결과가 비롯된 것이니, 이를 바로잡는 일은 마땅히 세상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몫이며, 하느님이 당신의 능력으로 정리하셔야 할 문제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해도 정말 ‘하느님의 능력’에만 기댈 문제인가? 그 능력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어떠한 것인가?
■ 그러나 ‘하느님의 능력’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세상을 마술적으로 다시 만들거나 고쳐 세우지 않는다. 하느님의 능력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섬김으로 드러나며, 사랑의 섬김을 통해 또 다른 사랑을 불러내는 신비스러운 힘이다. 사람을 짓누르는 불행 앞에서도, 부정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앞을 향해 걸어 나갈 수 있는 동력은 사랑의 섬김이라는 역설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가르침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몸소 짊어지셨던 고통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구원의 길이며 방법이다. 제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가 따라나설 때이다.
교우 여러분, 섬김은 사랑을 바탕으로 하며 섬김으로 사랑은 더욱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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