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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0-17 조회수 : 1330

능력에 따라 자리가 정해져야 한다고 믿는다면?
 
오늘 복음에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 곧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마지막 때에 당신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마실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럴 수 있다고 확고한 의지를 다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저는 이전에 이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당신 오른편과 우편에 앉는 것도 당신이 정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리고 능력이 있고 의지가 있는 사람을 더 높은 자리에 앉혀야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미 그 자리에 정해진 이들이 있다니?’
 
그런데 살다 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앉기를 원하는 사람, 혹은 그 자리에 합당하다고 원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을 때 항상 이런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구관이 명관이다!”
 
특별히 전임에 대해 비판을 많이 하던 이들은 전임보다 더 안 좋은 행태를 보이곤 했습니다. 
결론은 자신이 그 자리에 합당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그것 때문에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내가 어떤 집에 초대받았을 때 주인은 어디에 앉으시라고 이미 자리를 정해놓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내가 그 자리에 앉기에 합당하다고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면 자기는 주인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나라건, 회사건, 성당이건, 내 것이 있습니까? 모두가 주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는 주님께서 정해주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당연히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여기는 이는 무엇을 운영하던 하느님 뜻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할 공산이 큽니다.
따라서 자리가 주님에 의해 정해지는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자리에 앉히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노력하는 만큼, 능력 있는 만큼 자리를 인정받아야 한다? 이는 겸손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닌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생각입니다. 
 
만약 어떤 여자가 엄청난 자기관리로 어마어마한 돈과 재능과 능력을 보인다면 그 여자가 연애를 위해 남자를 고른다면 그렇게 선택된 남자들과 태어난 자녀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재산이 약 5천억 원에 달하는 미국 할리우드 배우이자 가수인 제니퍼 로페즈는 17년 전에 헤어졌던
벤 애플렉과 재결합했다고 합니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싶지만 제니퍼 로페즈는 벤 애플렉과 재결합하기 전에 이미 3번의 이혼과 2번의 파혼 경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빼고는 4번이 모두 남자의 외도로 헤어진 경우입니다.
그러면 제니퍼 로페즈가 외도하는 남자들만 사귄 것일까요?
어쩌면 남자들이 제니퍼를 부담스러워했던 것은 아닐까요? 
 
제니퍼 로페즈는 1969년생으로 작은 섬나라 푸에르토리코 출신입니다.
50세가 넘었지만,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에서 봉춤을 공연할 정도로 열정이 넘치고 완벽한 무대를 소화해 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힘들게 성공한 커리어를 놓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철저한 자기관리를 넘어서서 완벽한 무대를 위해 백댄서나 스태프들에게 무례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고 합니다. 
 
90년대만 하더라도 라틴계 여배우의 역할은 매우 한정적이었는데 로페즈는 자신의 노력으로 라틴계 처음으로 출연료 100만 달러를 받는 여배우가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가수로 데뷔한 것은 1999년 30세가 넘은 나이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영화계와 음악계의 디바로서 우뚝 선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백댄서와 코러스를 하며 라틴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스타가 되겠다는 꿈 때문에 그녀는 집에서 쫓겨나
댄스 학원에서 머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고생을 하고 수모를 견뎌내며 버텨왔다는 일화들은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로페즈는 엄청나게 연습하고 관리하고 노력하는 일 중독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에 대한 상급이 ‘관계’에까지 미친다고 여기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 앞에서는 남자들은 스스로 한없이 작아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로페즈가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남자를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가질 수 있다고 여긴다면 남자는 버티기 힘들 것입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또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고 있는 유명인, 어쩌면 우리도 내가 노력하면
저 사람과 결혼하거나 저 자리에 당연히 앉아야 한다고 여기며 사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결혼이나 교회에서 어떤 자리에 앉는 것은 주님께서 정해주시는 것이라 믿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그 자리에 앉은 것이고, 내가 하면 더 잘할 것 같고, 내가 저 사람을 선택해서 결혼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관계 내에 주님께서 계실 자리가 없습니다.
이 말은 ‘교만’이 바탕이 된 관계가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섬기는 마음이 없으면 상대의 교만으로 좋은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나 자리를 유지하는 힘은 ‘겸손’입니다. 
그런데 그 겸손은 내가 노력해서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거나 혹은 내 능력으로 이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교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렇게 정해주셨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 내에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교황님이 가장 많이 탄생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분들은 교회에 큰 오점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다 주님의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최근 성인이 되신 두 교황은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한 성 요한 23세이시고 그 공의회를 실현하기 위해 사셨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입니다.
 
교황 23세는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누구도 그분이 될 것을 기대하지 않았고 그것은 본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폴란드인 교황이라는 것은 좀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생각과는 다르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본인들도 원하지 않았던 자리에 앉은 두 교황은  현대사의 큰 획을 긋는 분들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느님의 시각으로 지금 그런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있다면 그것은 잘된 일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사제가 되면 본당신부보다 잘 할 것처럼 여기며 비판하는 사람은 관계나 자리가 인간의 능력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는 무신론자와 같습니다.
모든 관계와 자리의 주인을 하느님으로 믿읍시다.
그래야 겸손하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교회가 분열되지 않습니다.
 
세속적인 선거처럼 우리 교회도 그렇게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마티아 사도는 제비뽑기로 뽑았습니다.
관계와 자리에서 나는 섬기는 종의 모습인지, 하느님을 밀어내고 내가 주인이 되려는 모습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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