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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5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0-16 조회수 : 1064

어떤 승려가 수양을 위해 산속 토굴에 들어갔습니다. 깊은 산속이라 사람도 없고 어떤 시끄러움도 없는 고요함 속에서 깨달음을 얻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산나물 캐는 아주머니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이렇게 묻습니다. 

“조용히 공부하러 왔나 보네요. 그런데 물소리, 새소리는 안 시끄러운가요?”

이 말을 듣는 순간에 그 전에 전혀 느끼지 못했던 물소리와 새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승려는 이 순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시끄럽고 조용한 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 달렸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 역시 비슷한 체험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개인 피정을 위해 어느 피정의 집에 들어갔는데, 피정의 집 앞으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너무 큰 것입니다. ‘잘못 왔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피정에 집중하면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어느 순간 들리지 않았습니다. 고속도로 앞이라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그렇게 많았는데도 말이지요. 

자기 마음이 이렇게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하느님입니까? 세상입니까? 하느님께 있다면 하느님을 두려워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라면, 하느님께 불평불만 하는 일이 계속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 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바로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이신 하느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유대인이라면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철저히 지킨 이유가 무엇이었겠어요? 바로 하느님을 두려워했기에 율법을 철저히 지켰던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치 새로운 말씀을 하시듯이 이야기하십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한다고 말하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을 채우는 데에 더 큰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만 율법의 준수를 강요하면서 정작 본인은 보여주는 식의 모습만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을 다 세어 두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그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 마음이 향하는 우리가 될 때, 세상의 어떤 유혹도 우리를 침범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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