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을 많이 하며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그 마을의 현자라는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현자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어떤 창고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은 먼지로 가득했고, 여기저기 거미줄이 처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사람의 방문이 없었던 곳임을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현자는 그를 거울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거울 위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먼지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자, 현자는 자기 소맷자락으로 거울을 쓱쓱 문질렀습니다. 먼지가 가득 날리면서 현자와 이 사람은 눈이 따갑고 목이 칼칼해지면서 기침을 했습니다. 그 뒤 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님은 지금 먼지가 덮인 이 거울과 같습니다. 불평불만의 먼지가 가득해서 형제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먼지를 닦아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분명 쉽지 않고 유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업을 마쳐야 진짜 내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먼저 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 세상만을 바라보면 끊임없는 불평불만과 잘못된 판단으로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마치 먼지가 쌓여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교사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불행선언을 하십니다. 십일조는 열심히 지키지만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또 윗자리를 좋아하고 인사받기를 좋아하면서 정작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정작 자신의 옳지 못함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로마 2,6)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가지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하느님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불행선언의 주인공이 아닌, 행복 선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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