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니까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마귀를 쫓아낸다는 말은 복음을 전한다는 말이나 선교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귀도 한 팀이고 성령으로 일하는 사람도 한 팀이라고 하시며 같은 팀이 어떻게 같은 팀을 쫓아내느냐고 하십니다.
만약 11명이 뛰는 축구경기에서 한 선수가 못한다고 주장이 그 선수를 쫓아내면 10명만 뛰어야 합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못 뛰는 선수라도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명이 서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차리라 나가는 편이 낫습니다.
그 사람이 해 줄 것으로 믿고 있던 동료들은 멍하니 서 있는 선수 때문에 피해를 봅니다.
차리라 없다면 자신들이 조금 더 뛰며 그 자리를 메워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
예수님께서 감독이시다면 신앙인들은 선수들입니다. 당신의 목적은 악과 싸워 많은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교를 하지 않는 신앙인이 있다면 그 신앙인은 뛰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오히려 다른 선수들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성령은 능력을 줍니다.
그 능력을 받고 아무것도 안 하면 오히려 더 안 좋은 상황이 됩니다.
세례받고 선교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은 선교의 능력입니다.
이는 마치 우물을 파고 물을 퍼내지 않으면 말라버려 안 좋은 독충들이 그곳에서 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물 없는 곳을 찾다가 다시 돌아오는 악령들과 같습니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도 물이 흐르는 우물이라면 그것들은 그 자리에도 머물지 못합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흐르던가 말라버리던가, 선교하든지 흩어버리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리만 지키는 것은 그냥 흩어버리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선교 열정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그냥 나만 신앙생활 잘하면 된다고 여깁니다.
왜 지칠까요?
선교의 열정에서 진정으로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실패와 비난일까요, 아니면 칭찬과 성공일까요?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와 비난 등이 오히려 자신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임을 잘 압니다.
그래서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공하고 칭찬받아 현재에 머물려고 하는 마음이 자신을 망칩니다.
일본인인 가장 존경하는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는 교토의 막 작은 중소기업인
‘교세라’(KYOCERA)를 시작했을 때 기대치 않게 현 ‘파나소닉’의 전신인 ‘마쓰시다 전기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대기업이라 그런지 납품기준도 까다롭고 일정도 빠듯해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와 비슷한 다른 업체들은 마쓰시다가 갑질을 하고 있다고 불평불만을 자아냈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보통 ‘이 정도만 하면 됐지!’라는 생각과 ‘내가 왜 못해?’라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왜 우리는 더 큰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안정된 지금의 삶을 포기하고 더 큰 성취를 향해 나아가야 할까요?
물론 이나모리는 몇 년 동안 끝까지 마쓰시다의 갑질을 받아 주며 기술력도 성장시키고 생산비도 줄여서
미국의 반도체 회사까지 납품하는 큰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다른 회사들보다 기술력도 뛰어났고 심지어 가격도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교세라는 그렇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사람을 몰락시키는 것은 늘 00이었다.’, 유튜브 채널, 체인지그라운드]
실패와 고통은 성장시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가장 큰 독은 안주하려는 마음입니다.
만약 우물물을 더는 퍼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대부분 다시 말라버립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은 마른 우물이 다시 솟아나게 하는 마중물과도 같습니다.
물이 솟지 않고 말라버리면 그 안엔 이전보다 더 안 좋은 것들이 살게 됩니다.
그래서 더는 물을 마실 수 없는 상황까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왜 일하는가』에서 이나모리 가즈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당신이 일하는 것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음을 갈고 닦으며, 삶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행위이다.
나는 내면을 키우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열심히 일하는 것은 내면을 단련하고 인격을 수양하는 놀라운 작용을 한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80세에 엄청난 적자를 내는 일본항공의 경영을 맡아 13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하고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가 일한 목적은 돈이나 성취가 아니었습니다. ‘인격수양’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인격수양의 끝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인격수양은 하느님처럼 완전해지지 않으면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일도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몸이 아파 좋은 대학도 나오지 못하고 망해가는 아주 작은 중소기업에서
연구자로 일했습니다.
회사에서 연구비용을 대줄 수가 없어서 자기 돈으로 연구를 위한 기계를 구입하고 책도 사서 읽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그가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일한 목적인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고 감사하는가!’
하느님도 우리를 ‘선교’로서 인격수양을 시키십니다. 선교를 죽도로 하면서도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물이 계속 나와서 그 안에 악한 것들이 깃들이지 않게 됩니다.
선교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선교하면 하느님 자녀로서의 인격을 갖추어갑니다.
아니 신격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일하며 인격을 닦는다면, 선교하며 신격을 닦는 것입니다.
이나모리는 말합니다.
“20대 초반 나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특출난 재능도 없었고, 모든 일에 흥미가 없었다.
그런 청년이 어떻게 50년 이상 한 가지 일에 매달릴 수 있었을까?
그것은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렸기 때문이다.”
[참조: ‘왜 일하는가’, 유튜브 채널, ‘2분 독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돈을 주지 않으면 일을 대충하게 됩니다.
성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성과가 없으면 다른 길을 찾습니다.
하지만 정말 큰 성공은 돈이나 성공이 아니라, 일 자체를 목적으로 할 때, 일을 자신의 인격 수양의 도구로 여길 때, 그 모든 것은 나중에 따라온다고 이나모리는 말합니다.
하느님 자녀 됨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선교만한 사랑의 실천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를 성과를 바라고 한다면 금방 지칩니다.
선교를 하느님 자녀로서 신격수양으로 여기고 한다면 지치지 않고 좋은 성과까지 얻게 됩니다.
선교를 그리스도를 더 닮은 신앙인이 되기 위한 도구로 여깁시다.
이것이 아니면 세례를 받았어도 일곱 마귀가 들어와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의 비결은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것인 것처럼, 선교에서의 성공의 비결은 내가 선교하는 일을 좋아하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서 결정됩니다.
일하지 않으면 인격을 수양할 수 없듯, 선교가 좋은 이유는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내 안의 신성이 살아나고 드러나게 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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