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참석한 연피정의 주제가 ‘주님의 기도’였습니다.
강사 신부님께서는 그 짧고 간단한 주님의 기도를 가지고 10번에 걸친 강의를 준비하셨습니다.
문장 하나로 50분 강의를 하시는데, 정말 감탄 또 감탄이었습니다.
그만큼 주님의 기도는 풍요롭습니다. 문장 한줄, 단어 하나가 다 가치가 있습니다. 수많은 보화가 담겨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삶의 지침이 거기 다 들어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천천히 음미하다보면, 그 안에 별의 별 것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 인간 존재가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들어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간단명료한 지침들도 들어있습니다.
초세기 교회는 주님의 기도를 얼마나 중요시 여겼는지 모릅니다.
아무나 이 기도를 바칠 수 없었습니다.
정식으로 교회 공동체에 가입한 사람들에게만 바칠 수 있도록 허락되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였기에, 이 기도를 바칠 수 있다는 것은 당시 큰 특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신자들은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큰 경외심과 ‘삼가 하는 마음’ 감사의 정과 더불어 바쳤습니다.
이러한 흔적은 오늘날 미사 경문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기 전에 사제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권유합니다.
“하느님의 자녀 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
‘삼가 아뢰오니’, 통상적인 표현은 아닙니다만, 이 표현의 뜻은 ‘조심스런 마음으로’, ‘경건한 몸가짐으로’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건성으로, 습관적으로 주님의 기도를 바쳤던 지난날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너무나 황송한 마음으로,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너무나 행복한 마음으로, 충만한 기쁨과 더불어 주님의 기도를 바쳐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는 비록 소박하고 간결하지만 예수님께서 설파하신 복음을
가장 명백하고 포괄적으로 집약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한 마디로 말해서 ‘복음의 요약’입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완덕의 길’에서 주님의 기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책보다도 훌륭한 주님의 기도를 정성스런 마음으로 겸손한 자세로 묵상한다면 다른 책이 아쉽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에 사용된 ‘아버지’란 표현은 당시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만이 가능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심으로서, 당신과 하느님 아버지 사이에만 이루어졌던 친자(親子)관계를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까지 확대시켜주십니다.
우리에게도 이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길을 활짝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은혜롭고 감사한 일인지요.
주님의 기도, 이제부터라도 좀 잘 바쳐봐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세 살배기 어린이가 부르듯이 신뢰심과 친밀함을 담아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겠습니다.
오늘 비록 우리가 보잘 것 없고 부족하지만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빛나는 예수님의 얼굴로 변화되기를 희망하며 주님의 기도를 바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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