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에게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톨스토이는 이렇게 인상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첫째는 지금 여기, 둘째는 옆에 있는 사람, 셋째는 그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랑의 실천을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특별한 날에만 또 특별한 사람에게만 하는 사랑이 아닌, 지금 여기 가까이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당장 실천하는 사랑이 가장 귀한 것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이 사랑의 실천은 주님께서도 제일 강조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실천을 통해서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사랑의 실천을 좀처럼 실천하지 못합니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나의 것을 채우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또 ‘나중에’라는 말로 뒤로 미룰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랑은 지금 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또 사랑은 내게 잘해준 사람에게 나도 보답 차원에서 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마르타가 예수님을 시중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동생 마리아가 언니인 마르타를 돕기는커녕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말씀만 듣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타는 답답하겠지요. 예수님께 더 잘 대접하기 위해서는 일손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할 텐데, 예수님 옆에서 빈둥대는 마리아가 어떻게 예쁘게 보이겠습니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2)
마리아가 가장 좋은 몫을 선택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가장 귀한 일은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현세의 어떤 일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마리아처럼 그 말씀을 듣는 ‘경청’의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마르타는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녀 역시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예수님에게 잘해주는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둘 다 바른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틀렸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행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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