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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9-29 조회수 : 1200

천사 없는 관계는 소멸한다
 
오늘은 세 대천사 축일입니다.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중개자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직접 인간과 대화하시고 친교 맺으시면 되지 왜 천사를 만드셔서 중개하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관계를 맺는 두 당사자 간의 거리는 멀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냐면, 관계 당사자가 서로 가까워질수록 관계는 소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관계는 믿음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너무 가까워서 하나가 되어버리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실상 관계는 소멸하는 것입니다. 
둘이 뭉쳐서 하나가 되면 독립성과 개별성, 그리고 자유에 대한 존중이 사라집니다.
이게 사라지면 인격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소유하는 물건처럼 취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나의 ‘자유’가 구속당하면 그것으로 관계는 이미 소멸을 시작하게 됩니다. 
 
남자를 자기 침대에 묶어 놓는 영화 ‘미저리’나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손과 발을 자르는 영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와 같은 것들은 공포가 따로 없습니다.
상대가 나를 떠날 수 없게 되면 이제 상대를 나와 함께 머물게 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간에 상대를 잡아놓기 위해 내어놓아야 하는 ‘피’, 곧 ‘희생’이 사라지기 때문에
둘의 관계는 소멸하는 것입니다.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서로의 ‘피’입니다. 이것이 상대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이 ‘피’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가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과 머물게 하려고 당신 천사인 ‘그리스도’를 내어놓으시고 인간은 ‘선악과’를 봉헌합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을 당신과 머물게 하시려고 당신 살과 피와 같은 ‘교회’를 내어놓고 이것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교회라는 천사를 통해 좋은 친교를 맺으십니다. 모든 관계가 이렇습니다.
중간에 피와 같은 천사가 오가지 않으면 관계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두 사람은 서로의 고유함을 존중해주기 때문에 하늘과 땅처럼 실제 거리는 멉니다.
절대 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이때 하늘을 나타내는 아버지와 땅을 나타내는 아드님이 그 상징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을 오가는 두 분의 피가 곧 천사들, ‘성령’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랑은 삼위일체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하느님을 닮지 못했습니다. 
피를 흘릴 줄 모릅니다. 
소유의 본성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남자와 여자는 사귈 때 피가 덜 담긴 매개체를 이용합니다. 
영화나 책, 음악이나 취미 등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나서 함께 살다 보면 현실의 벽에 부딪힙니다. 
 
일본에서 흥행한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도 두 남녀의 이런 관계를 잘 표현했습니다.
영화와 책을 좋아해서 만난 두 연인은 함께 동거합니다. 하지만 3년이 되니 현실적인 문제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막상 필요한 것은 ‘돈’입니다. 
돈은 곧 나의 희생이자 피와 같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아직 로맨스를 꿈꿉니다.
여기에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여자 주인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일을 하기 위해 자격증까지 따서 들어간 회사를 그만둡니다.
그러자 남자는 화가 납니다. 
자신도 만화 그리는 것이 좋지만 함께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는데 여자는 여전히 이전 즐거움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그런 애매한 곳 들어갔다가 잘 안 되면 어쩌려고?”
여자는 자신의 취향을 짓밟는 남자에게 짜증을 내며 말합니다. 
“그거야 그때 가서…. 맞는 말이야. 너는 업무에 책임감을 갖고 힘든 상황에서도 잘하고 있는데.”
“힘들다고 생각 안 해. 일이니까. 거래처 분이 뒈지라며 욕하고 침을 뱉을 때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힘들지 않아. 업무니까.”
 
“그 거래처 사람 정상이 아니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 해도 이마무라 나츠코의 ‘소풍’을 읽어도 아무것도 못 느낄 거야.
그런 인간이 너에게 상처를 준다는 건….”
“어쩌면 나도 이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수 있어.
‘골든 카무이’도 7권에서 멈췄고 ‘보석의 나라’ 이야기는 기억도 안 나고 아직도 그런 걸 읽는 네가 부럽기만 해.”
여자는 한심한 듯이 말합니다. 
 
“읽으면 되잖아. 숨 좀 돌리면서 살아.”
남자도 짜증이 납니다. 
“그게 안 돼. 머리에 안 들어와! ‘퍼즐 앤 드래곤’ 외엔 하고 싶지 않아……. 어쨌거나 직장 일도 생활을 하기 위한 거잖아.
전혀 힘들지 않아. 취미를 살리니 뭐니 하는 건 내 입장에선 인생을 얕보는 거로 들려.”
 
“좋아서 함께 지내는데 왜 그리 돈만 중시해?”
“오래 함께 있고 싶으니까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여자는 소리를 지릅니다. 
“난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긴 싫어. 즐겁게 살고 싶어.”
 
남자도 소리 지릅니다. 
“그럼 결혼하자! 결혼하자고. 내가 열심히 돈 벌게. 넌 돈 벌지 말고 집에 있어. 집안일 안 해도 돼. 매일 좋아하는 일만 해!”
여자는 한심한 듯 읖조립니다. 
 
“그거 프로포즈야? 지금 프로포즈 한 거야? 생각했던 거랑 완전 다르네. 휴….”
남자도 고개를 떨구며 말합니다. 
“없던 걸로 해….”
 
그렇게 둘은 4년의 동거를 마치고 결혼에 골인하지 못합니다.
남자는 함께 사는 것에 의를 두고 살려고 하지만 여자는 더는 아무 로맨스도 느끼지 못하는 남자와 함께 살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헤어지자고 하고 나서 어쩔 수 없이 여자가 방을 구하는 3개월 동안 함께 사는데 이젠 서로를 구속하지 않으니 친구처럼 다시 재밌게 사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상대를 구속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그리고 둘의 사이를 희생의 피로 메웠으면 어땠을까요?
그러나 두 사람이 마음이 맞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하늘이고 아드님은 땅입니다. 
서로 하늘과 땅처럼 멉니다.
이는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성령을 통하여 당신 전부를, 아드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성령을 아버지께 보내십니다.
 
이 오가는 천사와 같은 성령님이 둘의 공간을 메워줍니다. 
이렇게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과 같은 사랑을 하십니다.
그럼으로써 탄생하는 것이 그 자녀들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오가는 천사의 도움으로 시들지 않는 사랑을 하는 하느님 사랑을 닮은 자녀들입니다. 
 
천사의 존재는 바로 이 삼위일체 사랑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사 없는 관계는 소멸합니다.
자유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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