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님께서는 철저하게도 비폭력주의 노선, 평화주의 노선을 걸어가십니다!
파릇파릇한 수사님들의 선생 역할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적당히 했어야 했는데, 지나친 책임감에, 거기다 저도 나름 한 성깔 있었던지라, 틈만 나면 불벼락을 날린 기억이 떠오릅니다.
부끄럽게도 지금 생각해보니 별것도 아닌데, 집합시키고 호통을 치고...
예수님 시대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만 만나면 ‘잡종’이니 ‘정통이 아니니’ 하면서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이에 화가 난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유대인들만 만나면, ‘지들은 뭐 특별한 것인 있을까봐? 괜히 개폼만 잡는 것들’ 하면서 서로 상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유다 산골 출신 예수님께 대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대접이 좋을 리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을로 들어서시는데도 아예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자신들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사마리아 사람들 때문에 제자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질 급하기로 유명했던 야고보와 요한이 참다못해 예수님께 이렇게 아룁니다.
“주님, 저 인간 덜된 것들 정말 예의가 없는데요. 주님께서 도착하셨는데도 쥐새끼 한 마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루카 복음 9장 54절)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그래, 너무 심하게는 하지 말고, 정당히 정신들 차리도록 혼 좀 내줄 필요는 있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꾸짖으시며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보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는 철저하게도 비폭력주의 노선, 평화주의 노선을 걸어가십니다.
내가 화난다고 해서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이시키지 않으십니다.
설사 자신이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감정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으십니다.
조용히 사건을 해결하려고 언제나 심사숙고 하십니다.
그리고 최대한 물러나시고, 끝까지 비폭력을 강조하십니다.
우리 인간 내면에는 은연중에 폭력에로 기우는 경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일이 있어도 폭력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제 힘으로 인간이나 세상을 지배되는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늘 심사숙고 하고, 큰 인내로 대화하면서 타협점을 끌어내려는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조금씩이나마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시간이 좀 걸린다 할지라도 앞뒤 정황을 잘 따져본 다음, 물러설 것은 크게 물러서고 양보하면서 대화로 일을 풀어나가려는 노력이야말로 복음적 노선이며 비폭력 노선의 바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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