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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9-23 조회수 : 1078

세례자 요한은 죽이면서 예수님은 만나려는 사람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세례자 요한을 죽인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복음을 전할 때 임금을 회개시키면 그 나라 전체가 회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만나보려는 헤로데는 무시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가 먼저 세례자 요한을 죽임으로써
당신의 초대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세례자 요한은 누구일까요? 세례자 요한을 죽이며 그리스도를 만나려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교회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를 만나겠다는 이들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신 세례자 요한입니다. 
 
예를 들면 나주 율리아는 교회는 거부하면서도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만나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죽이는 이들을 절대 만나주지 않으십니다. 
 
혹은 냉담자들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러면서 힘들 때면 왜 자신들도 신앙인인데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시지 않느냐고 불만을 표출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이 파견하신 교회에 머물지 않으면서 당신이 주시는 은총을 기대하는 이들을 만족시키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된다면 당신이 파견하신 교회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들을 둔 40대 남편이 희귀암에 걸렸습니다. 의사들은 암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저기 전이된 암은 그 뿌리가 깊어서 면역항암제를 투여해도 줄어들지 않았고 방사선 치료로도 더 커지기만 했습니다. 
 
1년 동안 미국에서 연수하던 김범석 교수가 9월에 돌아온다는 말에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꿈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의사가 큰 등산 가방을 메고 뛰어오면서 “방법이 있어요! 방법이!”
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사진으로만 본 얼굴이었는데도 꿈에서는 너무 생생했습니다. 
 
1년의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더는 희망이 없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미국에서 보고받던 것보다 훨씬 안 좋은 상태였습니다. 항암제도 말을 듣지 않고 방사선 치료도 무용지물인 상태에 더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만 오래전부터 눈 빠지게 기다렸다는 가족의 기대를 갑자기 무너뜨리기 뭐해서 항암제는 계속 투여해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겠고 외부로 드러난 암 덩어리의 크기를 매일 스마트폰으로 찍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커지는 것을 보며 그들도 마음을 접을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며 나름대로는 모진 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3주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온 환자를 보고 의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므로 의사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습니다. “참 기적 같은 일이네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암이 반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로도 암은 계속 줄어들었습니다. 
환자의 아내는 의사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그렇게 기다렸던 선생님께서 군더더기 없이 말씀해주신 첫 회진 덕분에 이렇게 감사의 편지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날 ‘모진 말’을 하셨다고 했는데 아니었어요. 온 가족이 엉뚱한 기도로 새는 힘을 모아 더 격려하고 기도하며 단단해졌어요.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셨던 의도를 그때도 지금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 꿈에 나타나서 외치신 ‘방법’이 정말이었다는 게 저희 가족의 생각입니다.”
 
특별한 처방도 한 것이 없고 이전에 해오던 치료와 다를 바가 없었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에 가족의 믿음이 큰 역할을 했을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의사도 그 가족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형식적으로나마 치료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구구절절 쓴 편지 곳곳에서 남편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새삼 이들을 죽음의 나락에서 건져낸 것은 의사의 처방이 아니라 면역항암제가 아니라 그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암 투병은 환자도 가족도 모두 지치는 일입니다.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이 이어져가다 보면
그나마 남아있던 사랑도 남루해지기 쉽고 희망도 쉽게 잃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긴 투병의 모든 끝이 상처만 가득한 폐허로 남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그러니 희망 없는 속에서도 그 사랑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암 덩어리가 줄어든 것만큼이나 기적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왜 그 가족의 믿음을 직접 들어주시지 않고 1년 동안이나 자리를 비운 의사를 기다리게 하셨을까요?
그리고 별다른 처방도 아닌 그동안 맞아왔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던 면역항암제 처방을 내리는 의사에게
순종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믿음이 그 의사를 통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나의 믿음은 구체적이지 못합니다.
만약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하느님께 대한 나의 사랑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누군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보이지 않는 분을 믿는 것은 거짓입니다.
따라서 더 구체적이고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의 파견자인 세례자 요한을 죽인 헤로데가 당신을 보려고 할 때 예수님은 그를 믿을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신 눈에 보이는 교회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께 순종할 수 있을까요?
눈에 보이는 교회는 곧 세례자 요한과 같습니다. 교회를 무시하며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현시대에 헤로데와 같이 헛되게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김용태 마태오 신부는 성 김대건 신부 4대손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순교자 집안의 후손답게 살 수 없는 처지였고, 당연히 형들이 모두 사제가 되다 보니 자신도 신학교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제품을 받기 직전에 자신은 김대건 신부님처럼 순교할 자신이 없어서 사제직을 포기할까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성체조배를 하며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는 사제품을 받아들입니다.
빛과 성령으로 둘러싸이는 그 체험은 마치 기적과도 같이 모든 두려움을 이겨낼 힘을 주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분에 대한 믿음은 항상 보이는 파견된 자에 대한 믿음으로만 증명됩니다.
그 파견된 교회 안에 머무르다 보면 반드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파견된 것에 대한 믿음은 파견하신 분에 대한 믿음의 시작입니다.
보이는 것을 무시하면 보이지 않는 것엔 도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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