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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9-22 조회수 : 709

저는 스포츠 경기를 좋아합니다. 예전에는 몸으로 직접 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체력도 안 되고 또 여건도 되지 않아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응원하는 팀이 생겼습니다. 

며칠 전에도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여유 있게 이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판에 실수가 계속 터져 나오면서 역전되어 지고 말았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냥 신경질적으로 텔레비전 전원을 껐습니다. 

원래 어떤 경기든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길 수도 있고 반대로 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졌다고 해서 신경질을 내는 것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나의 욕심대로 흘러가야 한다는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자기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불평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뜻을 내려놓으면 삶 자체를 즐길 수가 있습니다. 자기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면 세상의 눈으로는 어렵고 힘든 삶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서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십니다. 여기까지는 당연히 그렇게 해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주님의 말씀은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글쎄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합니다. 

조그마한 유혹에도 금방 흔들리는 제자들이 아닙니까? 제자들이 예수님 없이 처음으로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러 나가니까 부족함 없이 챙겨줘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오로지 주님께서 주신 권한만을 간직할 것을 명하십니다. 

세상의 관점이 담겨 있는 자기 뜻을 내려놓고 대신 주님의 뜻을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있어야 하고 저것도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주님께서 주시는 권한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를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든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줄 수 있었습니다. 성공적인 전교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우리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주님께 얼마나 많은 청원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까? 그런데 정작 가장 필요한 주님의 뜻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은 청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만 청하면서, 점차 주님을 내 삶에서 제외합니다. 

만족의 삶이 아닌, 불평불만의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이 아닌, 어렵고 힘든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만족의 삶은 주님의 뜻을 품을 수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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