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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9-17 조회수 : 1337

여성 봉사자는 사제의 오른팔인가, 그리스도의 왼팔인가?
 
오늘 복음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1.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신다. 
2.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3. 여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이런 구조로 볼 때 예수님의 협조자는 제자들이고, 제자들의 협조자는 여성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차별을 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왜 여성들은 사제가 될 수 없고 수녀님으로서 사제의 협조자 역할만 해야 할까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잘못일까요?
그래서 일각에서는 여성 사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안타깝지만 이미 물 건너간 이야기입니다.
 
사제가 교회의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대리하기에 여성이 사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시대적 상황이 그래서 당시는 여성이 사제가 될 수 없었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처럼 여성도 당당히 제자들과 함께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협조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공회는 여성 사제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성체를 나누어 줄 때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대리해야 하는 사람이 여성일 때는 신자로서는 아무래도 헛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들의 협조자들인 여성도 여성이기에 맡은 역할은 다르지만, 남성과 같은 영광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정말 교회에서는 수녀님들이 사제들처럼 영광을 받을까요?
아무래도 사제들이 영명축일 같은 행사는 더 크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제들은 어쩌면 신자들이 주는 영광을 피상적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더 가까워 자녀들의 감사를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직접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수녀님의 묵상글입니다. 함께 나눕니다. 
“그 전 본당에서 작년 겨울 소임 이동을 준비하고 떠나기 직전에 좀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평소에 열심히 기도하시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초에 대한 집착이 있으셔서 지난해에도 다 쓴 제대초를 대부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제대회에 봉헌금을 내고 짧아진 제대 초들을 택시를 동원하여 받아가십니다. 
 
그런데 잘은 모르겠는데 신자분들이 이 할머니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열심히 기도하시고 초에 대해 그렇게 오래전부터 집요한 애착을 두고 있어선지 그분들 사이에서는 약간 무시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도 저는 할머니의 그런 모습과 주위 분들의 그런 태도에 별 신경 안 쓰고 그냥 편하게 지냈어요.
 
그런데 제가 소임 떠난다고 하니까 할머니가 저를 조용한 곳으로 잠깐 가자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갔는데 저보고 의자에 앉으라고 하셔서 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것 같아 같이 의자에 앉으시자고 하니까 굳이 일단 의자에 앉아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의자에 앉으니까 할머니가 갑자기 맨바닥에서 저에게 절을 하시는 거예요.
제가 너무 놀라 당황했는데 절을 하시면서 저에게 ‘수녀님 저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는 할머니의 절을 받고 제가 갑자기 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을 체험했어요.
그러면서 할머니가 저를 꼭 껴안으시면서 죽을 때까지 저를 못 잊을 거라고 하셨어요.
할머니는 자식들 데리고 제가 떠나는 부임지로 꼭 한번 찾아가겠다고 하시면서 손을 못 놓으셨어요. 
 
저는 그날 밤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큰 표징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할머니가 마치 하느님과 같이 느껴지면서 그 할머니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저에게 2년 동안의 이 본당에서 그래도 헛되이 살지 않았고 하느님이 위로와 사랑을 주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런 체험이 또한 그저 평범하고 약한 이들 안에도 역시 숨어 계신 하느님의 존재와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소중한 신앙 체험으로 제 마음에 간직되고 있습니다.”
 
여성이 가진 어머니의 모성과 사랑을 남성은 쫓을 수 없습니다. 여성들은 성당에서 이런 역할을 합니다.
사제들이 하지 못하는 역할이 있는 것입니다. 
여성이 사제가 되려는 것이 여성의 권위를 향상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여성의 권위를 더 높이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교회에서 점점 여성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수녀님이 줄어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성모회도 사라지는 곳이 많고 자모회도 예전만큼 힘이 있는 단체가 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성당에 갔을 때 수녀님이 안 계신 성당은 왠지 좀 삭막한 것 같다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사실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오늘 복음의 여성들과 비견할 복자품에 오른 분이 계시는데 ‘강완숙 골룸바’입니다. 
이 분은 ‘한국 천주교 초대 여성회장’이셨습니다. 
이분의 역할은 그분이 숨겨주셨던 주문모 신부님 못지않습니다. 
 
강완숙 골룸바는 서첩의 자녀로 태어나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오라버니들의 어깨너머로 글공부를 하였으나, 오라버니들보다 더 뛰어난 학식으로 영특한 여성이었습니다.
순천에서 아내와 자녀가 있었던 사람과 혼인하여 시모와 전처 자녀를 성실히 키웠습니다. 
 
처음에는 불교에 입문하여 열심히 불경을 공부했으나 그에 충족하지 못하고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서학을 알게 되어 심취하게 됩니다. 
남편은 박해가 심해지자 자신의 아내가 천주교를 가까이함을 알고 배교하기를 바랐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니 집에서 내쫓다시피 합니다.
그래서 강완숙 골롬바는 시어머니와 아들과 함께 한양으로 이사합니다.
얼마나 어르신을 잘 모셨으면 시모와 전처소생인 아들까지 같이 한양으로 상경했을까요? 
 
이때 중국에서 선교사로 오신 주문모 신부님을 모시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주 신부를 찾고 있을 때라 시모께서 아실까 봐 광에 모시고 대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내다 골룸바는 단식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3일을 굶으니 시모님께서 왜 식음을 전폐했는지를 물으시고 마음의 병으로 그렇다고 하니, 시모가 여러 사정을 물으며 당신도 같이 식음을 전폐하고 2일이 흘렀다고 합니다.
 
총 5일을 금식하신 복녀는 그제야 자신의 사정을 시모님께 아뢰었었고 시모님께서 그러한 마음의 병은 걱정하지 말라 하시며 주문모 신부님을 댁으로 모시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렇게 주문모 신부는 골룸바 집에서 6년간 사목합니다.
주 신부 입국 당시 겨우 4,000명에 불과했던 신자 수는 5년 만에 1만여 명을 헤아리게 되었는데, 특히 그중에서도 골룸바의 활약으로 여신도의 수가 절대다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총회장으로서 주위 아낙네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정부는 주 신부의 체포에 혈안이 되었고 골룸바는 주 신부를 피신시켜 체포를 면하게 하였습니다.
주 신부 체포에 혈안이 된 포도청에서는 갖은 고문으로 강완숙에게 주 신부의 행방을 다그쳤으나, 함구하여 밝히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기로 인해서 수많은 신자가 심한 고통을 받고 있음을 가슴 아파한 주 신부가 자수하여 처형당하자,
이를 옥중에서 전해 들은 강완숙은 자기 옷을 찢어서 그동안 주신부가 조선에서 활동한 경과를 적어
후세에 남기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전해 받은 어느 여 교우의 부주의로 말미암아 그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모진 형벌인 주뢰(周牢)를 여섯 번이나 받으면서도 끝까지 굽히지 않으므로 형리들도,
“이 여인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다.”라고 감탄하였습니다.
이렇듯 옥중에서 갖은 고난을 겪은 지 만 3개월만인 그해 7월 2일, 형장인 서소문 밖으로 나가는 길에서도
강완숙은 다른 4명의 여 교우들을 격려하고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였습니다.
즐거운 빛으로 제일 먼저 목숨을 바치니, 그때 나이 41세였습니다.
 
이렇듯 누가 강완숙 골룸바 복자가 주 신부보다 뒤처지는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 신부가 해야 할 역할이 있었고 강완숙 골룸바가 해야 할 역할이 있었습니다.
골룸바가 없었다면 주 신부는 머물 곳이 없고 사목할 곳도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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