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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9-15 조회수 : 1105

돈만 많이 주면 출산율이 높아질까?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성모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받으신 고통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모님 고통을 보답해 주시는 것처럼 요한을 당신 아들로 주십니다. 
 
십자가 신학에서는 예수님은 교회의 신랑이시고 성모님은 신부이시며 요한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성모님께서 교회의 어머니가 되시기 위해 신랑이신 그리스도께 순종하여 교회를 낳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교회의 어머니라 불림을 받으십니다. 
 
이것은 성모님께서 고통받으신 것의 보답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편하게 지내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하여 하느님 자녀들을 낳으셨습니다.
그러니 하늘에서 당신 자녀들을 보시며 참으로 행복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에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 더 큰 행복이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녀를 더 낳으라고 하면 어머니들은 ‘당신이 키워줄 겁니까?’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만큼 한 자녀를 더 낳는 것은 큰 고통이 따릅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출산율은 전세계 최하위입니다. 
2020년 우리나라 출산율은 0.84명입니다.
OECD 국가 중 출산율 1.0 이하인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현 속도로 가면 2100년경 총인구는 1650만 명대로 쪼그라들고 2300년경이면 100만 명도 안 돼
사실상 국가의 소멸입니다. 
 
옥스퍼드 인구문제연구소 데이비드 콜먼 박사는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를 연구하고 코리아 신드롬이란 말을 썼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지구촌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극도로 아기를 낳지 않는 이유를 대부분은 돈이 많이 든다는 것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주택정책과 교육을 위한 재정지원 정책으로 어마어마한 액수가 매년 투자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집값만 더 오르고 사교육비는 더 증가합니다. 
그리고 출산율은 계속 곤두박질칩니다.
그런데 유럽 나라들은 이런 정책들을 하지 않을까요? 합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효과가 없고, 외국은 효과가 있다는 그 차이입니다. 
 
오늘 성모님 ‘고통’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성모님의 고통은 교회의 어머니가 되시는 고통이었습니다.
왜 다른 사람들이 아닌 성모님은 이런 고통을 감내하시길 원하셨을까요? 돈을 많이 줘서였을까요?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자녀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고통을 함께할 어머니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고통에서 자녀를 많이 낳게 만드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이나 마더 데레사와 같은 분들은 많은 하느님 자녀를 낳으신 분들입니다.
그들은 왜 그런 고통을 감내하셨을까요? 단순합니다. 하느님을 알아 행복하셨기 때문입니다. 
 
한 정글 지역에 있는 개신교 학교에 매우 보기 흉한 소녀가 찾아왔습니다. 
흉한 몰골의 그 소녀는 코가 없는 기형아였고 심지어 지적장애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학교의 교감은 그를 환대하고 학교에서 지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학교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래 몇 마디를 배우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코 없는 소녀가 가진 유일한 소질이었습니다. 
 
그러나 몇 달이 되지 않아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의 반대로 더는 소녀를 가르칠 수 없었고
그래서 교감은 그 소녀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녀는 슬퍼하며 다시 정글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렇게 소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사라졌습니다.
 
2년 후, 한 선교회에 정글 마을로부터 복음을 전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의 편지가 왔습니다.
선교회는 그 마을의 요청을 받아들여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선교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언덕에 모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가 오자 몇몇 사람들이 그를 맞이하여 주민 가운데로 인도했습니다. 
 
선교사는 먼저 찬양을 하나 가르치기로 하고 간단한 합창을 하나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300여 명의 원주민은 “우리도 아는데요.”라고 말하며 찬양을 함께 불렀습니다. 
선교사는 너무나 놀라 다른 찬양을 불렀는데 역시 그 찬양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배우셨나요? 내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는 한 사람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선교사는 놀란 듯이 그들을 쳐다보았고, 그들은 한 사람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바로 학교에서 쫓겨난 후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진 그 소녀였습니다. 
 
그녀는 지적장애인이었지만 자신을 받아준 학교에 대한 감사를 느꼈고 자신이 외운 찬송가를 자기 마을에서 매일 부르고 다녔던 것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든 그날그날의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누구는 그 같은 고통 속에서도 아이를 더 낳고 누구는 낳지 않으려 합니다.
어쩌면 나와 똑같이 불행한 아이를 더는 낳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녀를 많이 낳게 하려면 나라가 나서서 내가 낳는 자녀가 나처럼 행복한 사람이 될 확신을 하게 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한데도 자녀를 낳지 않으면 이율배반이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현재 어느 나라가 가장 출산율이 높을까요? 항상 우리나라와 비교되는 이스라엘입니다.
2018년 기준으로 이스라엘이 3.09명이고 그다음이 멕시코 2.13명입니다. 
그리고 터키가 1.99명, 프랑스가 1.84명입니다.
꼴찌에서 두 번째가 스페인인데 1.26명이고 한국이 당시 0.98명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2위 멕시코와의 격차도 상당합니다.
이렇게 가면 이스라엘은 미국처럼 커지고 한국은 지구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복지가 좋을까요? 당연히 좋습니다. 정년이 68세이고 아기를 더 낳으라고 갖은 장려를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와 문화입니다. 
그들은 하느님 백성이라는 자존감이 있습니다.
그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문화 안에서는 자신만 그 행복을 누리고 그래서 또 다른 하느님 백성을 낳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텔아비브에 유학해 23년째 거주하는 한국 여성 정자은 씨(44)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아이가 삶에 중요하다는 종교적 믿음이 있고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은 수치스러워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출처: ‘출산율 이스라엘 1등, 한국 꼴찌 왜?’, 김세형, 매경 칼럼)
 
내가 낳은 자녀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광스럽게 빛나게 될 것을 믿는다면, 그런 확실한 태몽을 꾸었다면 그 아이를 낳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모님도 그렇게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자녀 낳는 고통을 거부하는 이유는 고통 자체를 원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 고통에 대한 확실한 보답이 있을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녀를 낳아봐야 나처럼 고통만 받으며 살 것 같으니, 자녀가 왜 나를 낳았냐고 원망을 할 것 같으니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복한 사람만이 자신과 같은 행복한 사람을 낳기 위해 고통을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행복은 ‘자존감’과 비례합니다. 
출산율을 높이려고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소용없습니다.
그것으로 자존감이 높아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누구냐는 정체성으로 높아집니다. 
이는 진화론이 팽배한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진화론 안에서 우리는 그저 유전자를 나르는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낮은 자존감과 행복감 안에서는 나의 생존이 우선이지 나의 불행을 이어받을 자녀를 낳기 위해
고통을 감내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아무리 선교를 강조해도 선교하지 않을까요?
선교를 강조하며 억지로 고통을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행복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이 행복을 느끼게 하려고 시키지 않아도 선교할 것입니다. 
 
더 많이 낳게 하려면 그 낳는 사람이 태어난 자녀가 자신처럼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확신을 자신이 느끼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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