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전할 때 벌어지는 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하여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러 세상에 오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십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기쁜 소식을 왜 전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당신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명백히 말씀하십니다.
이때 베드로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반박합니다.
아마 다른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이것이 당신이 누구인지 아는 믿음이 있어도 복음을 전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진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그리스도 때문에 자기 목숨에 영향이 가지 않는 사람이란 아직 참 복음의 의미를 모르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들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며 하느님의 아드님임을 압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죽일 마음이 없으므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게 오히려 도와주는 것입니다.
영화 ‘파운더’(2016)는 밀크셰이크 믹서기를 판매하는 외판원 ‘레이크록’과 맥도날드 형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믹서기 하나 파는 것도 힘든데 어느 한 시골에서 8개나 주문한 것입니다.
도대체 어느 매장이기에 그 많은 믹서기가 필요한지 궁금해졌습니다.
당시 햄버거 하나를 주문하면 30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하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게에서 햄버거를 주문한 레이크록은 자신이 주문한 것이 30초 만에 나오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이는 맥도널드 형제들이 수십 년간의 비법을 집대성하여 최대한 빨리 햄버거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이가 들도록 아무 성과도 없이 믹서기나 팔러 다니던 레이크록은 이 매장을 프랜차이즈로 운영하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맥도널드 형제들에게 자신이 가맹점을 늘리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맥도널드 사장 형제는 자신들이 만드는 음식의 품질과 고유한 시스템을 손상하지 않는다면 손해 볼 것이 없다고 믿고 그 규정만 지켜준다면 그가 가맹점을 늘리게 만드는 것을 해도 좋다고 허락해 줍니다.
그러나 이것이 실수였습니다.
레이크록이 가맹점을 늘리다 보니 자신에게 돌아오는 수익이 너무 적었습니다.
그래서 맥도널드 형제들 몰래 부동산 회사를 맥도널드 이름으로 설립합니다.
그는 가게에서 나오는 돈으로 부동산을 매입해 가맹점을 모집하고 그 사람들이 내는 돈으로 또 땅을 사서 가맹점을 모집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값싼 밀크셰이크 파우더로 대체합니다.
그렇게 이윤이 남는 것으로 또 땅을 삽니다.
이 사실을 맥도널드 형제들이 알았을 때는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레이크록은 이미 부동산 재벌이 되어있었고 시골 가게 하나만 달랑 가진 맥도널드 형제들이 재벌과 싸워 이길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형제들은 목덜미를 잡고 레이크록에게 맥도널드 권리를 싼값이 팔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든 것은 맥도널드 형제들인데 그 맥도널드를 널리 퍼뜨리려던 레이크록이 맥도널드까지 먹어 삼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했다가는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원님 덕에 나팔 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중에 원님을 위해 불던 나팔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볼 때는 원님 없이 혼자 영광을 챙기게 됩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전하는 것이 이처럼 위험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내가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그리스도가 되려면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사람들이 나에게 영광을 주더라도 내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잊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 복음의 내용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살기 위해 십자가에 나 자신을 죽이는 삶을 살지 않는 이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교회에 불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는 것을 내세워 당선되어서는 가톨릭 신자의 모습과 전혀 상반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스도를 이용한 것이 됩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영화 ‘밀양’에서도 전도연은 아들을 납치 살해한 살인범을 용서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하느님께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자신이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느님이 감히 어떻게 먼저 용서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죽지 않고 하느님과 분리된 사람은 결국엔 교회에 폐를 끼치게 만듭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믿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와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살게 되었다는 믿음입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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