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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9-11 조회수 : 1106

당신이 누구라고 믿건 당신의 믿음은 옳다.
 
오늘 복음은 ‘본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가 열릴 수 없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둘 수 없습니다.
본성이 선한 사람은 선한 마음에서 선한 행동을 내어놓고 본성이 악한 사람은 악한 행동을 내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따라서 마음, 곧 본성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고 생각이나 행동을 변화시키려 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바라시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예수님이 이렇게 가르치셨으니 그것을 실천하자.”라는 식의 가르침은
신자들을 금방 무너질 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 곧 본성은 오직 ‘믿음’으로만 변화됩니다. 
마음 안에 자리 잡는 것이 셋 있는데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본인이 늑대라 믿으면 사람이면서도 늑대의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까치도 자기가 개라고 믿으면 개처럼 짖어댑니다. 사람이라도 본인이 개라고 믿으면 개의 소리를 내며
마치 먹을 것을 빼앗길 것처럼 자녀들을 학교에 못 가게 방안에 가둡니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자신의 본성대로 밖에 살 수 없습니다. 
 
내가 먼저 본성이 그리스도가 되었음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같은 본성끼리여야만 완전한 친교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자격 미달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하더라도 그 열등하다고 믿는 수준만큼밖에 친교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건 겸손이 아닙니다.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본인이 늑대라고 믿는 사람과 인간이라고 믿는 사람이 어떻게 온전한 친교와 사랑이 이뤄지겠습니까?
 
“이방에 들지 않겠어요.”
켈리 여사가 호텔 보이에게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가구 하나 없는 이 게딱지만한 벽장에 들면서 그렇게 많은 방값을 지불하진 않을 겁니다.
당신은 내가 촌에서 올라왔다고 깔보는 모양인데….”
“부인 일단 타세요.”
보이가 그녀의 말을 자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부인의 방이 아닙니다. 엘리베이터라고요!”
 
자존감은 내가 누구냐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누구와도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본인 스스로 그럴 자격이 없다고 판단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관계를 맺는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다 내 열등감의 희생양이 됩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작은 것에도 무시당하는 것 같아 상처받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와 만날 때 먼저 가져야 하는 것은 나도 저 사람에게 꿀릴 게 하나도 없다는 자신감입니다.
이 자신감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누구도 만나지 마십시오. 어쨌거나 그 관계는 비극으로 끝날 것입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한 여학생이 입사 지원서를 냈는데 면접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지원한 분야는 회계업무부서였는데 회사는 경력자를 선호하는데 그녀는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디려는 사회 초년생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입사 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번에 그녀는 “면접이라도 치를 수 있게 꼭 기회를 달라.”라고 사정했고 면접관은 그녀의 적극적인 의욕을 높이 샀습니다.
결국, 그녀는 필기시험까지 무사히 통과하여 인사경리 부서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사경리부서의 책임자는 입사시험 성적이 뛰어난 그녀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으나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회사 규정상 자격 미달이었습니다.
다른 부서와 마찬가지로 인사경리부서 역시 경력 사원을 찾고 있었습니다.
면접을 보러 온 여학생에게 그는 예의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도 좋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다시 전화로 연락을 드리지요.”
분위기가 냉담해진 것을 알아차린 여학생은 갑자기 1달러를 꺼내어 면접관에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좋으니 꼭 제게 연락해 주세요.” 
면접관은 이렇게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라 잠시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는 여학생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전화하지 않을 것을 어떻게 알았지요?” 여학생이 말했습니다. 
“아까 분명히 좋은 소식이 있으면 연락하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의 의미는 합격하지 못하면 전화하지 않겠다는 말이잖아요.”
면접관은 점차 호기심이 발동하여 다시 물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당신을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면, 당신이 알고 싶은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저의 어떤 점이 귀사의 채용 기준에 부적합한지 알려주시면 앞으로 고치겠습니다.”
“그럼 아까 내게 준 이 1달러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학생이 말했습니다. 
 
“회사 규정상 불합격자에게 연락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전화 요금을 따로 드린 거예요. 
그러니 떨어졌더라도 연락 부탁드립니다.” 
 
면접관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번졌습니다.
“1달러를 돌려주겠어요. 당신에게 전화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을 채용하기로 했거든요.” 
여학생은 단돈 1달러와 재치 있는 행동으로 인생의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출처: 『좋은 생각이 행복을 부른다』, 커쥔, 프라임]
 
이렇듯 자신이 만나는 무엇과 관계를 맺기에 합당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그 믿음을 사제가 거행하는 성체성사를 통해 주십니다.
따라서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죄인이라고 합당하지 않다고 하지 맙시다.
그 마음 없애주기 위해 성체 성혈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야곱이 에사우의 옷을 입고 자신이 에사우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성체를 영한 우리는 그리스도라 믿고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들에게 이런 믿음을 주는 레베카와 같은 사제들입니다.
사제는 먼저 자신이 그리스도가 되었음을 믿고, 다른 이들도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행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을 변화시켜주는 것입니다. 
 
내가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해봅시다. 
사과나무를 심었는데 썩은 사과가 맺혔습니다.
이는 내가 주님에게 합당하지 않다는 믿음입니다. 
계속 썩은 열매만 맺는 그 나무는 어떻게 될까요?
 
내가 하느님과 관계 맺기 위해서는 하느님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에 합당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예수 그리스도라 믿는 그 믿음이 바로 좋은 열매입니다. 
그래야 내가 잘리지 않습니다. 
 
성체를 영한 뒤 여러분 안에서 이런 음성이 들려올 것입니다. 
“나는 예수다!” 그러면 여러분은 응답하십시오. 
“아멘!”
이것이 하느님과 동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열매를 맺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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