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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9-07 조회수 : 1356

우리 관계가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이유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산에서 밤새 기도하시고 내려오셔서 열두 사도를 뽑으십니다.
밤새 아버지께서 교회의 열두 주춧돌로 누구를 원하시는지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면서도 당신 뜻대로 사도들을 정하시지 않고 아버지 뜻을 물으셨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아버지 때문에’ 만들어진 관계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내가 제자들을 뽑으면 내 의지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내 의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아버지가 뽑아주셨으면 아버지 때문에 그 사랑이 식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그만큼 헤어지며 삽니다.
그 이유는 그 관계가 하느님이 맺어주신 것인지 밤새 기도할 수 있는 자세가 안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주관대로 관계를 맺고 자기 주관대로 관계를 정리합니다.
혹은 상황이 불안할 때 쉽게 상황 탓을 하며 헤어집니다.
누구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그 고리가 너무 약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관계의 고리를 ‘아버지의 뜻’에 두신 것입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1차 세계 대전과 볼셰비키 공산 혁명의 배경하에 쓰였습니다.
내용이 정치적이고 상징적이어서 혁명 후 핍박을 받기도 하였지만, 오늘은 그런 상징은 배제하고 줄거리만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유리 지바고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부유한 친척 집안에서 키워집니다.
그리고 소꿉친구인 그 집안의 딸 토냐와 결혼을 약속합니다.
지바고는 모스크바 의대를 나와 의사이고 시인으로서 전도유망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온 토냐와 결혼하여 파티를 즐기는 삶을 살던 도중 운명의 여인 라라와 만나게 됩니다. 
 
라라는 어머니의 정부와 같았던 꼬마로프에게 추행을 당합니다.
그녀는 핍박받는 민중이 대변인으로 혁명에 가담이라도 하듯 자신을 그동안 괴롭혀 왔던 로마노프에게 총을 쏩니다.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어서 지바고가 치료해주고 사건은 마무리됩니다.
첫눈에 반하기는 했지만, 토냐와 약혼한 사이였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짧은 만남은 끝이 납니다. 
 
라라도 애인이 있었는데 구소련을 지지하는 파샤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라라와 결혼하였지만, 꼬마로프에게 그런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에게 온 것을 알고는 군입대를 하여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합니다.
 
라라는 자신의 남편을 찾기 위해 간호사로 전쟁에 참여하는데 이때 군의관으로 참전 중인 지바고와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됩니다.
파샤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라라와 지바고는 사랑에 빠집니다.
라라는 평민 출신으로 귀족의 딸인 파샤가 줄 수 없는 무언가를 지바고에게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둘은 헤어져 모스크바로 돌아옵니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부유층인 지바고는 숙청 대상자 명단에 올라있었습니다.
그가 발표한 감성적인 시들 때문이었습니다.
지바고는 모스크바를 떠나 아내와 함께 우랄 지방의 오지 바르키노에 은둔합니다.
그곳에서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인간 도서관에서 책을 찾으러 간 지바고는 또 운명처럼 그곳에서 사서로 일하는 라라를 만납니다.
그 넓은 러시아에서, 그것도 시골 은둔지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라라의 집에서 둘은 또다시 만납니다. 
 
하지만 아내가 임신하자 그의 생각은 바뀝니다. 프랑스로 가족과 함께 망명하려고 결심하고 헤어지자는 말을 하러 라라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의사가 필요했던 빨치산에게 납치되어 강제로 근무하며 오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샤는 지바고가 자신을 떠난 줄 알고 아이를 데리고 프랑스로 망명합니다.
가까스로 탈출하여 바르키노로 돌아온 지바고는 유일하게 라라를 만나게 됩니다.
라라는 지바고가 떠난 뒤에도 계속 편지를 쓰며 지바고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두 연인은 다시 만나 또 행복한 삶을 삽니다. 
 
그러던 중 꼬마로프가 찾아옵니다.
예전에 라라가 총을 쏜 인물입니다. 
그는 라라를 잊지 못하고 거짓말을 합니다.
사실 파샤는 공산당원들에게 붙잡혀 처형당했기 때문에 지금 라라도 위험한 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바고는 어쩔 수 없이 라라의 안전을 위해 그녀를 원수와 같은 꼬마로프스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뒤 파샤가 라라를 찾아왔고 그녀가 꼬마로프와 떠나버린 것을 알고는 자살합니다. 
 
지바고는 공산당 간부가 된 이복형의 도움으로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와 마리나라는 여자를 만나 아이도 낳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고생을 너무 한 탓인지 라라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쫓아가다가 죽고 맙니다. 
 
오랜 시간 뒤 유리 지바고의 이복형은 우연히 수력발전소에서 근무하는 한 젊은 여성이 자기 이복동생 지바고의 딸임을 알아봅니다.
이것이 장군과 그의 조카인 타냐의 대화입니다.
장군이 묻습니다.
 
“어떻게 아버지와 헤어지게 됐느냐?” 타냐가 주저하며 울먹거리다가 겨우 대답합니다.
“사실은 불길 속에서 아버지가 내 손을 놔 버렸어요.” 장군은 잠깐 숨을 고른 후에 대답합니다.
“네가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꼬마로프스키는 너의 친아버지가 아니다.
너의 친아버지는 닥터 지바고다.
진짜 아버지라면 불길 속에서도 자녀의 손을 놓지 않는 법이다. 아버지란 존재란 그런 것이다.
언제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우리의 손을 놓지 않는 분이 아버지다.”
 
예수님께서 가리옷 유다의 손을 끝까지 잡고 계셨던 이유는 당신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맺어주신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하나같이 상황이 자신의 사랑을 이어준다고 믿었습니다.
꼬마로프스키는 그 상황에 거짓말까지 사용하며 라라를 차지합니다.
닥터 지바고는 운명 같은 만남이 하늘의 뜻처럼 생각했지만 꼬마로프의 거짓말에 넘어갑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 때문에 프랑스로 떠난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더는 찾지 않습니다.
 
라라의 남편 파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사랑보다 자신이 지닌 이념에 충실했습니다.
토냐도 남편 유리 지바고가 자신을 떠나버렸다고 생각하고 남편을 떠나버립니다. 
 
정말 인간 중심적인 사랑은 인간의 욕망에 너무 쉽게 흔들리고 그런 욕망 안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아이들입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게 되고 또 자신들도 그런 욕망에 끌린 사랑을 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관계를 위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밤새워 기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쉽게 만나고 쉽게 떠나고 아이들은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성장합니다.
결혼하기 전에 밤새워 성체 앞에서 하느님의 뜻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의지가 생깁니다. 
 
따라서 더 사랑하기 위해서 내 없는 의지를 짜낼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사랑하는지 생각하고 그 누구를 하느님으로 두어야 합니다.
부모 때문에 사랑하는 형제들은 아무래도 부모가 다 돌아가시면 그 인연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바로 손을 놓아버립니다.
하느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살아계신 한, 그리고 자신이 하느님을 믿는 한 그 관계를 쉽게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만남이 참 하느님 뜻인지 여쭤보기 위해 밤새워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어쩌면 이것이 끝나지 않는 참사랑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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