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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9-05 조회수 : 1176

9월5일 [연중 제23주일]
 
마르코 7,31-37
 
기도로 얻는 세 가지: 손가락, 숨, 혀 
 
우리는 무엇을 얻기 위해 기도할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세 가지가 나옵니다. 
 
오늘 예수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의 귀와 혀를 치유하십니다.
그런데 이 치유 사화는 단순한 육체적 장애의 치유를 넘어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를 치유하기 위해 하시는 모든 행위가 상징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를 ‘군중 밖으로’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이는 ‘세상 밖으로’와 같은 의미입니다. 
세상의 소리가 우리 귀를 먹게 만듭니다.
 
옛날에 경찰이 허위 진술을 하도록 유도할 때 잠을 며칠 동안 재우지 않아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진술하도록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머묾은 그런 세상에서의 탈출을 의미합니다.
이를 ‘광야’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광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다음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십니다.
손가락으로 본인의 귀를 막고 잠시 있어 보십시오. 
무슨 소리가 들릴까요?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세상과 단절되고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남은 바깥세상에서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이뤄집니다.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은 바깥세상만이 아니라 ‘자기 생각’입니다. 
나와의 대화에서도 귀를 막고 내면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주님은 내 가장 깊은 곳에 계십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하늘을 향해 ‘한숨을 내쉬십니다.’
왜 그를 향해 숨을 내쉬지 않고 하늘을 향해 내쉴까요? 온 공기 안에 당신의 숨이 머물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동양에서는 이를 ‘기’(氣)라 표현하고 호흡을 통해 이 기를 자신 안에 모으는 명상이 발달했습니다. 
 
물론 ‘숨’은 그리스도교에서 ‘성령’에 해당하는 단어와 일치합니다.
세상을 끊고 생각을 끊고 자기 내면 안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말씀하십니다. 
 
귀를 막았을 때 결국 나에게 들리게 되는 것은 ‘본인의 호흡 소리’입니다. 
모든 명상에서 호흡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여러 호흡법이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호흡을 마치 성령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소리처럼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손에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시고’ 그에게 “에파타!”(열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 사람은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예수님의 ‘침’은 또한 ‘성령’을 의미합니다. ‘숨’이 성령의 진리 말씀을 나에게 전하는 역할이라면, ‘침’은 그 말씀이 입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힘입니다. 
성령 강림 때 제자들이 불 혀와 같은 형상의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게 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렇듯
- ‘세상과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귀를 막으심’
-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하심’
- ‘들은 말씀을 세상에 전하게 하심’.
이렇게 세 단계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이 과정을 적용해 볼까요? 
한 자매님이 귀를 막고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고 그 말씀을 전하는 기도의 체험을 말씀하신 것을 옮겨봅니다. 
 
“그때 제 나이가 47세이고 3남 2녀 중고등학생 어머니였습니다. 
남편은 대학병원 의사로 근무하다가 막 개업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게 되어 집을 이탈리아 가구들로 장식하고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혈안이 되어 살았습니다.
손님들을 초대하여 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줄도 모르고 교만과 자만심으로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노하셨는지 병원에 의료 사고가 생겼습니다. 
환자가 주사를 맞다 다리 신경이 마비되었습니다.
그 환자는 준재벌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 다리를 제대로 해 놓지 않으면 병원을 망하게 만들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때 제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망하게 되었을 때 친구들에게 창피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세례는 받았지만, 하느님을 찾기보단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다니고 부적이란 부적은 다 써서 붙였습니다. 
심지어 점쟁이 말대로 보따리를 싸서 피신까지 했었습니다. 
 
2~3개월 후에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께 매달렸습니다. 성지로 매일 미사를 다니고 심혈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할 때는 두 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하늘의 계신 우리 아버지’ 하면 아버지가 진정 내 아버지로 여겨질 때까지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면 아버지의 영광만을 위하는 마음이 들 때까지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주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저의 본성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하느님의 본성이 된 것 같았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 의료 사고가 해결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완전히 사라지고 그 큰 두려움도 사라져
우리 집이 거지가 된다 해도 주님만 있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를 두렵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참 평화와 행복, 참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보답하기 위해 성당에서 갖은 봉사를 다 했습니다. 
남들이 꺼리는 일들부터 땀 흘리며 했습니다.
 
몇 달 후에 그 환자가 스스로 연락을 줘서 조건 없이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그 분의 완고하던 마음을 주님께서 돌려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 이후에도 힘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목소리만 생각하면
지금도 모든 것에 감사하고 행복할 뿐입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한 사람의 귀를 막으시고 그 사람에게 당신 목소리를 들려주시며  그 사람을 통해 당신 사랑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내가 세상과 나 자신에게 죽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그분의 사랑이 나를 통해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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