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포인트: 거기가 정말 물 반, 고기 반인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그물을 씻는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올라 설교를 하시고 다시 그물을 쳐볼 것을 권하십니다.
베드로는 그물까지 다 씻었고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자존심상 그렇게는 못 하고 자기주장을 펼쳐야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배에서 예수님께서 설교하시는 내용을 들어서인지 그는 순종해봅니다.
그러자 놀랄 만큼 많은 물고기가 잡혀 깜짝 놀랍니다.
그물을 칠 때는 그저 한 번 속아본다는 마음으로 친 것이 분명합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설교가 설득력 있었다는 뜻도 됩니다.
모든 설교자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은 ‘일단 한 번’ 해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확신하지 못하는 일을 해보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요?
부모가 “난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너는 한 번 읽어봐!”라고 하면 아이가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고 할까요?
내가 해보고 확신이 생긴 것만 설득력을 가집니다. 설득하는 사람의 기본은 본인이 먼저 설득당했어야 합니다.
저는 한동안 물을 적게 먹는 것이 좋다는 것에 설득당한 적이 있습니다.
토끼는 풀을 먹으며 그 안에서 수분을 충분히 흡수한다고 합니다.
오히려 물을 마시면 병이 걸려 죽는다는 것입니다.
아기는 몸 안에 90%의 수분이 들어있어서 병균에 매우 취약하다고 합니다.
어른은 70%이지만 죽기 직전에는 50%까지 수분이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같은 용적 안에 백혈구와 같은 면역 세포들이 더 많이 활동할 수 있어서 모든 병균을 다 잡아먹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럽 인구의 1/3을 죽인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그냥 관에 넣고 묻은 사람들이 죽고 나서 관속에서 다시 깨어나 관을 긁다 죽은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묘지를 옮길 때 관속에 많은 시체가 손톱이 빠지고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고 ‘드라큘라’로 여겨 심장에 말뚝을 박는 일까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채소를 통해 수분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어서 굳이 소화액도 묽게 만드는 물을 마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도 신학생 때 유학할 때 4년 동안 거의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체중도 줄고 감기와 같은 것도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제서품을 받았을 때 살 때문에 무릎이 좋지 않은 한 은퇴한 의사 선생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몸이 아프다기에 건식식사를 제안해 드렸습니다.
물을 마시지 말아야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자신 있게 말씀드렸고, 그분은 사흘 동안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아 탈수증으로 구급차에 실려 갔습니다.
후배 의사들은 도대체 어떤 놈이 물을 마시지 말라고 했느냐고 추궁했지만, 그분은 함구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물을 적게 마신 덕분에 나중에 통풍이 걸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물을 많이 마셔야 좋다고 확신하지만, 그때는 나의 확신이 의사 선생님까지도 전염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먼저 확신하면 많은 사람을 확신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확신이 물을 마시지 않는 게 좋다는 식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낚시하는 사람이라면 물고기가 많은 곳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하는 이라면 하느님을 만나게 할 수 있는 포인트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아일랜드에 영어를 배우러 갔을 때 고마우신 분들의 초대로 한 가정에서 두 달 동안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저를 당신들 지인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는데 그분은 낚시에 도사셨습니다.
바닷가에서 낚시를 던지기만 하면 바로바로 커다란 돔들이 걸려 올라왔습니다.
그곳은 전복과 굴, 해초들이 많아서 밀물 때 돔들이 몰려든다는 것입니다.
그냥 던지면 올라오는 포인트였던 것입니다.
그것들을 잡아서 바로 바위 위에서 회를 쳐서 양주를 섞은 기네스맥주와 함께 먹었는데,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우러러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이런 포인트를 아시는 설교자셨습니다.
설교는 설교는 하나의 ‘도움의 은총’입니다.
도움의 은총은 생명의 은총을 지향합니다.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이 생명의 은총입니다.
예수님은 설교로 베드로를 설득하고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기적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포인트를 아셨기 때문에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바꾸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는 우리들은 사람들을 어떤 포인트로 이끌어야 할까요?
그 포인트는 반드시 물 반, 고기 반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고 또 다른 복음 전파자가 됩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추천하는 것은 ‘기도-단식-자선’입니다. ‘마귀-육신-세속’을 이기기 위해 주님께서 추천하는 방식입니다.
자아를 벗어날수록 주님과 만남이 가까워지니 설교자는 일단 한 번 믿어보고 기도-자선-단식을 실천해보도록
유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자선에 대해서는 ‘십일조’를, 절제에 대해서는 ‘단식’을,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는 ‘성체조배’를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외도한다는 자매들에게 성체조배를 하루 한 시간씩 하라고 했더니 남편이 돌아오던가 자신이 남편을 용서할 수 있게 되는 등의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이 더 큰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단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먼저 간헐적 단식으로 살을 빼니 주위 많은 분이 따라 하고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정신이 맑아지는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반만 먹으면 두 배로 오래 산다는 책도 있습니다.
십일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저는 신학생 때부터 십일조로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흘려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돈이 부족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십일조는 모든 것이 주님 것임을 고백하는 신앙의 시작입니다.
제 유튜브에 ‘신 소화 데레사’란 분이 자신의 체험을 공유한 것이 있어서 함께 나눕니다.
“신부님 말씀처럼 십일조를 봉헌하니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된 것 같고, 가진 것을 다 팔아 땅속에 보물이 묻혀 있는 밭을 사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영적 서적구매나 성경공부, 성지후원 등을 할 때도 그런 것 같고요. ^^)
열등감을 채우려고 아이들 학원, 예쁜 옷, 더 큰 집, 좋은 차, 맛집 인증샷, 여행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을 땐
십일조를 내가 굳이 내야 하나, 내가 부자도 아닌데 하는 무분별한 상태였고 그땐 시기 질투로 늘 불안했고 화도 났고 성당에 가도 부담스러웠었습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봉헌하고부터는 주님께 받은 은혜가 많아 십일조를 낼 수 있는 게 감사하고
건강한 것도 감사하고 아이들이 공부 못하면 어떠냐 건강한 것만도 감사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아이들도 하느님께서 지혜롭게 잘 자라게 해주실 거란 믿음까지 키워주셨습니다.
제가 이쁜 옷을 하나 사 입어도 십일조를 봉헌하고 나서 사 입으면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말씀으로 주님을 만나게 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말씀으로 할 수 있는 한계는 바로 순종의 문 앞까지 데려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문을 열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손해 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이 옳은지 시험해 보도록 부추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자선-단식에 대해 설교하는 이부터 확신을 지녀야 합니다.
나를 설득하지 못한 것으로는 누구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저희 고모는 불교를 믿어 종교가 다른 저희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임종 직전에 제가 대세라도 드리려고 했더니 거부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을 들여보냈더니 그때는 대세를 받아들이셨습니다.
내가 먼저 확신만 가지고 있으면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부터 기도-자선-단식을 실천하며 나 자신을 설득시킵시다.
그러면 나중에 그 경험으로 많은 이들을 설득시켜 신앙을 갖게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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