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마태23,13)
유다교에서 율법은 철저하게 지켜져야 할 하나의 규범, 계명이었습니다. 삶을 이해하는 길로써의 지침 또는 표지판이었습니다.
이러한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던 사람들이 바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호되게 질책을 받습니다. 율법은 잘 지켰지만, 율법의 본질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그런 위선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기도에 대한 고민을 말했습니다.
"신부님, 기도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
우리가 '기도의 본질'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이 바치던 기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기도의 본질'이 '기억과 머뭄'이라고 말하는 사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사제입니다.
때문에,
기도는 쉽게 바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쉽게 바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할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처럼 교회가 만들어 놓은 '율법과도 같은 기도'를 바치는 것에만 급급하고,
그것이 기도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도 위선자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불러야 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하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3,34)는 새 계명을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불행한 위선자들이 되지 말고, 행복한 신자들, 행복한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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