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가르치게 된다. 그 결과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교리를 올바로 가르쳐야 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도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지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눈먼 인도자들로서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 라고 가르칩니다.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그들이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집보다 하느님의 집을 만드는 돈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르침까지 바꿔버리는 그들을 이렇게 비판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그런데 돈을 좋아해야 한다는 식으로 가르쳤던 그들은 계속 번영했을까요?
나라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자신이 가르친 그대로 그것을 배운 사람들에게 당하게 되어있습니다.
고 김성수 목사의 강의에 나온 사례입니다. 영국에서 이런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남편을 사별하고 그 설움을 자녀를 통해 극복하려고 했던 한 엄마가 있습니다.
영국 어머니는 외아들을 무시 받지 않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안 되면 경쟁자를 밟고서라도 무엇이든 1등을 하라고 교육하였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였고 영국 옥스퍼드는 물론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도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합격 통지서를 받던 날 저녁 어머니는 아들과 그의 여자 친구 문제로 큰 싸움을 벌였습니다.
어머니는 공부를 마친 후 더 좋은 환경의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으니 당장 헤어지라고 했고, 화가 난 아들은
어머니를 야구방망이로 때려 숨지게 하였습니다. 왜 어머니를 죽였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난 어머니로부터 무조건 1등을 하도록 강요받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쟁취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나는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나의 꿈을 막는 자는 누구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나의 꿈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장애물이 어머니일지라도 내 앞에서 치워버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내 꿈을 막는 어머니를 죽여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누구나 이렇게 자신이 사는 방식으로 가르치고 그 가르침을 받은 이에게 그 방식대로 대우받게 됩니다.
돈을 좋아하게 만드는 교육이 ‘진화론’입니다.
우리나라는 신앙인들이 많은 것 같지만 실상은 세속적 복을 청하는 기복신앙이 강합니다.
자녀 성공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배우고 성장한 아이들은 부모를 잘 봉양할까요?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세계 최하위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돈만 아는 모기처럼 키웠다면 그 자녀들은 부모들의 노후도 걱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부모의 재산을 노리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어떨까요? 그동안 고수해오던 ‘십일조’ 교리가 현대 교리서에서 사라졌습니다.
십일조는 ‘삼구’(세속-육신-마귀)의 교리와 함께 사라진 것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과 싸워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는데 어쩌면 교회 지도자 중에서도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그런 거북한 교리를 뺀 것입니다.
이제 신자들은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하느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선악과와 같은 십일조를 바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떨까요? 교회가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신자가 많은 성당도 성당을 크게 짓느라 보수하느라 돈이 없습니다.
이웃을 도울 돈도 없고 매년 재정 걱정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런 대가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일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 왜 교회가 그 교리를 교리서와 교회법에서 빼버린 것일까요?
물론 조심스러운 추측입니다만, 어쩌면 교회 지도자들이 점점 더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가르치는 대로 본인이 살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사는 대로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과 더불어 20세기 현대에 들어와서 없어지거나 무뎌진 교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옥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고, 사람이 새로 태어나면 하느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말하기 조심스러우며, 심지어 예비자 교리서에서 교회가 어떻게 탄생하는지의 교리도 사라졌습니다.
우리 삼위일체 신앙고백에서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느님의 본성이 사랑이신데 한 분이실 수 있을까요? 혼자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오류로 흐를 것입니다.
교회가 이 흐름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세상과 반대로 돈과 쾌락과 교만과 맞서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이것은 명확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잘못된 교리를 배울 때 하늘 나라의 문은 그 사람에게 잠깁니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성경보다 먼저 ‘정통교리’를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자신이 아는 교리대로 해석되는 것입니다.
소공동체나 교회 모임에서 성경은 공부하되 교리서는 어렵다고 뒤로 물려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발전이 없는 신앙이 됩니다.
유다인들이 성경을 공부한다고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아니면 신천지가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올바른 신앙을 가지게 됩니까?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은 정통교리이고 교회는 그 정통교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가르침은 다 자기가 사는 삶을 정당화한 이론에 불과합니다.
그 이론으로 자기를 먼저 가르쳐서 그렇게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에서 벗어나지 맙시다.
교회가 진리의 기둥입니다.
자신은 술에 취하면서 자녀들에게는 술에 취하지 말라고 가르칠 수 없는 것처럼 교리를 만드는 지도자들이 자아와 세상과 싸우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적어도 신자들에게 그렇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삼구와 싸우지 않고 타협하며 사는 지도자가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으면 눈먼 인도자가 됩니다.
결국, 진화론적 가르침으로 교리가 기울게 된다면 그 교리를 배운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교회까지 공격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눈먼 인도자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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