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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8-20 조회수 : 1703

현대인이 묵상을 못 하는 이유는 내가 요리를 못하는 이유와 같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교사는 예수님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을 묻습니다. 
율법은 613개뿐만 아니라 관습법까지 합치면 수만 가지가 넘었는데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정신’이라도 대답하십니다. 
 
많은 율법 가운데 ‘정신’이 되는 율법이 두 개만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것과 관련된 수많은 율법 조항이 생기게 만들어 정작 중요한 정신을 잃게 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사람이 되신 사랑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는 범죄까지 저지르게 했습니다. 
 
현 시대는 이런 사탄의 계략이 바뀌었을까요? 똑같습니다.
워낙 잘 먹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정보라도 그것이 소화되어 내 삶의 일부가 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알아서 좋은 정보들이 소화되지 않도록 엄청나게 쏟아붓습니다.
사람들은 정보만 수집할 뿐 그것의 정신을 뽑아내어 내 것으로 삼지 못합니다. 
 
학습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음식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먹고 소화하고 배출하는 것처럼, 입력하고 이해하고
표출하는 것입니다.
배우고 익히고 시험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정보만 입력하는 것을 공부라고 여기면 그 정보들은 결국 내가 생각 없이 살게 만드는 독이 됩니다. 
 
묵상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뇌의 앞부분을 이용하여 생각하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이 작업은 마치 소가 풀을 뜯고 되새김질을 하는 것처럼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요리를 못하는 것은 재주가 없어서가 아닐 것입니다. 해보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굳이 요리하지 않아도 항상 남이 해 놓은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실력을 쌓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 ‘묵상기도’가 되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이미 정리된 정보들이 너무 많아서 굳이 생각하는 노고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에 가장 큰 일조를 하는 것이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은 생각 없는 인간을 만들기 가장 좋은 사탄의 도구입니다. 
저는 현대의 ‘666’(그리스도의 적)이 ‘스마트폰’이라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은 정보를 소화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이미 정리된 정보를 홍수처럼 쏟아부어 사람이 전두엽을 사용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게 만드는 전두엽을 퇴화시켜버립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게임을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자기가 눈으로 보는 정보는 곧바로 후두엽으로 갑니다.
머리 뒤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 정보가 나의 것이 되어 행동으로 표출이 되려면 전두엽으로 와서 분해되고 소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생각하면 늦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습득된 몸의 반응으로 바로 총을 쏘거나 총알을 피해야 합니다.
그렇게 ‘입력-숙고-표출’의 단계에서 ‘입력-표출’의 단계로 간소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본다고 가정해봅시다. 
영화의 화면은 너무 빠릅니다.
그래서 한 화면의 내용을 깊이 숙고할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다음 화면의 정보를 입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화만 보고 산다면 머리가 텅 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그랬습니다. 너무 정보가 많아서 하나도 소화할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정신도 에너지입니다.
에너지가 여러 곳에 분산되면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야구를 할 때나 테니스를 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공을 끝까지 봐!”입니다.
보는 것이 어떻게 그 복잡한 동작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끝까지 보지 않으면 헛스윙하거나 빗맞습니다.
 
지금까지 연습한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말은 “공을 끝까지 보자!”입니다. 이처럼 그것에 통달한 사람들은 거기에서 모든 것이 다 따라올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말 하나를 찾아내고 오직 그 생각만 합니다.
그렇게 내 전두엽의 작용으로 묵상이 된 것을 단순하게 가르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이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멀티태스킹이 원래 불가능하게 되어있기에 주의를 동시에 여러 곳에 분산시킬 수는 없습니다.
멀티태스킹을 한다는 말은 주위를 빠르게 여기에서 저기로 옮긴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것을 반복하다 보면 이것에도, 저것에도 집중할 수 없습니다.
뇌도 다른 것에 할당한 주의를 하나로 끌어오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힘을 쓸 때, “하나, 둘, 셋!” 하는 것과 같습니다. “셋!”에 힘을 줄 때까지 “하나, 둘!”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일을 이것, 저것 분산해서 하는 것은 시간 낭비요, 에너지 낭비입니다. 
우리는 사탄이 어떻게 우리의 머리가 텅 비게 만들어 심지어 묵상도 하지 못하는 뇌로 만드는지 그 계략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현대에 주의력을 가장 분산하게 만드는 것이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은 사용하지 않고 옆에만 두어도 뇌가 힘들어합니다. 그것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게 에너지를 쓰기 때문입니다.
마치 모기가 물지 않고 윙윙거리기만 해도 신경이 쓰이는 것과 같습니다.
스마트폰은 일할 때는 다른 방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카톡에 답을 하는 것도 시간을 정해놓고
한꺼번에 하는 버릇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생각 없이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스마트폰이나 게임, 유튜브 동영상 등을 많이 보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파묻혀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도 못 하는 그런 자녀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반면 책을 읽으면 한 주제에 오래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에 전두엽이 활성화되어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됩니다.
 
사탄이 이 세상에서 생각 없이 인생을 허비하며 살게 만들기 위해 쓰는 가장 악랄한 방법이 정보의 홍수에 빠져 멀티태스킹 하며 살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힘들지만 책을 읽으며 천천히 그 주제를 묵상하는 연습을 합시다.
나의 묵상이 단순한 가르침으로 표출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것도 나의 것이 아닙니다. 
 
저는 수원교구 꾸르실료의 지도를 맡고 있습니다.
꾸르실료는 본래 온전한 교리도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하던 당시 스페인 교회를 바로잡으려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육 안에는 교리를 가르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이미 남이 써 놓은 강의를 그대로 외워서 하지 말고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에 강의를 해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반응은 ‘우리가 어떻게?’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다들 잘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입력된 것만 그대로 반복하는 패턴이었다면 이제 ‘묵상’이라는 것을 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한 주제로 한 시간 이상 생각할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체험과 연결될 수 있고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면 그 율법이나 교리가 비로소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면 다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 수많은 정보의 공격들을 꼭 끊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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