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부자로 만드는 열등감, 가난하게 만드는 양식
어제 복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으면서도 가진 것을 다 팔아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어려워 주저하던 부자 이야기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런 부자가 하느님 나라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기보다 어렵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자는 돈의 액수에 달렸지 않습니다. ‘돈에 대한 집착’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 제자 중에서도 외적으로는 부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그런 재산은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거지라고 할지라도 신문지와 잠자리에 집착하여 이웃과 싸우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부자입니다.
부자는 욕심이 많아서 나눔의 사랑을 실천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재물뿐만 먹는 것도 마찬가지고 권력이나 명예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 세상 것에 집착하는 이는 부자이고 하늘 나라 들어가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것들에 집착하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돈이 없어서 돈을 모을까요? 아닙니다.
결국, 모든 집착의 원인은 ‘열등감’입니다.
자존감이 없으니 그런 것들로 자신들의 자존심을 세우려 하는 것입니다.
보디빌딩을 할 때 어떤 개인 트레이너들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음료수에 스테로이드를 타서 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개인 교습을 받다가 여자인데도 수염이 나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현상도 겪게 된다고 합니다.
이는 헬스 트레이너 ‘김동현’ 씨가 ‘실화 탐사대’에 나와 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약물로 운동을 하다가 거의 성불구에 가깝게 되고 나서야 약물을 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스테로이드를 많이 복용하면 이런 증상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정자 생산 능력 저하, 성기능 약화, 심근경색, 심장마비, 급사, 전립선 비대증, 전립선암, 당뇨병, 고지혈증,
목소리 변화, (여성의) 남성화 등.”
이런 것을 알면서도 약물을 끊을 수 없는 이유는 몸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남들이 자신을 대단하게 봐주는 시선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헬스 전문 유튜버인 ‘박승현’ 씨는 고등학교 때 키 163cm에 몸무게 54kg의 왜소하고 잘난 것이 하나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05kg의 지나치게 근육이 비대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운동할 때 사람들이 봐 주니까 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약물을 하루에도 수십 차례 복용하며 몸을 키운 것입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약물을 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고 하니, 그는 차라리 약물을 끊게 하려면 죽음을 달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저는 이 몸을 통해서 많은 걸 얻고 있고 이것들을 버리고 싶지 않아요.
작은 몸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관심이나 사랑을 많이 받아보질 못했습니다.
그런 상태로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게 되었는데 그래도 운동을 하다 보니까 몸이 조금 좋아졌어요.
그러니까 나한테 관심을 주고 나한테 말을 걸고 그러는 거예요. 내가 거기에 미쳐버린 겁니다.
나는 한 번도 살면서 받아보지 못했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거죠.
나를 특이하게 보고 나를 대단하게 봐주니까 저는 여기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어요. 약물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요.”
재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굶어 죽을까 봐 재물에 집착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 사랑받지 못한 열등감 극복용으로 모으는 것입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주식을 50억쯤 하는 솔로인 중년이 되신 자매님이 코로나로 며칠 사이
10억밖에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정말 죽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10억이면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죽고 싶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이뤄놓은 것이 많지 않은데, 주식으로 성공했다는 자존심이 무너지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가난한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핵심은 ‘자존감’입니다. 열등감이 큰 만큼 집착이 큰 부자이고 자존감이 큰 만큼 가난한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가난한 사람의 것입니다.
그런데 자존감은 ‘양식’으로 길러집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담긴 양식을 잘 먹은 이들은 자존감이 큽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늘에서 오는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같은 부모의 같은 양식을 먹는다면 그 사람은 지위가 상승합니다.
자존감이 폭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게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2014년에 복자 품에 오른 분 중에 백정 출신도 있습니다. 순교자 황일광 시몬입니다.
1792년 황일광은 우연히 홍주 땅으로 이주하여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에게 교리를 배우게 됩니다.
교우들은 그의 사회적 신분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를 애덕으로 감싸주고 하느님 안의 한 형제로 대합니다.
이 때문에 그는 농담조로 이렇게 이야기하곤 하였습니다.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경기도 광주 분원에 있는 정약종 회장의 집 이웃으로 이주해 살면서 황사영과 김한빈 등 여러 교우와 친밀하게 지냅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난 뒤, 황일광은 땔나무를 하러 나갔다가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옥으로 끌려갑니다.
그러나 포도청과 형조에서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아무도 밀고하지 않았습니다.
관리들은 천한 신분을 가진 자가 그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배교의 대가로 주겠다고 하는 목숨도 거부하는 데 화가 나서, 더 무서운 고문을 가했습니다.
황일광은 모든 것을 굳건하게 참을 뿐 아니라, 하늘에서 느끼는 것 같은 기쁨으로 외쳤습니다.
“더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겠으니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 결과 그는 다리 하나가 부러져 으스러지도록 매질을 당합니다.
사형선고를 받고는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가족들이 자기 곁으로 오지 않게 합니다.
홍주에 도착한 1802년 12월 27일, 참수터로 끌려나가 즉시 처형되었으니 이때 그의 나이 45세였습니다.
백정이면 열등감도 있을만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재물은 물론이요, 애정이나 생명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미사 때 양반이나 상놈이나 할 것 없이 같은 식탁에서 생명의 양식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부모의 자녀는 우열이 없습니다.
같은 식탁에서 같은 사랑이 담긴 음식을 먹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가난해져서 집착에서 벗어나 나눔을 실천할 수 있으려면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먹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이들만 사랑을 실천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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