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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8-16 조회수 : 1509

형제들끼리 “너는 내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
    
오늘 복음에서 한 부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영원한 생명에 관해 묻습니다. 
그런데 묻는 방식 안에서 자신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그는 선한 일을 해야만 구원을 받는 줄 압니다.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십계명은 ‘사랑’에 관한 율법입니다. 
그가 ‘행동’에 관해 물었기에, ‘행동 지침’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행동으로는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더 완전함을 추구하는 그 사람에게 가진 것을 팔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당신을 따르려면 가진 것을 팔아야 합니다. 
 
돈에 대한 욕구가 있다면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기에, 그리스도를 따름은 곧 욕구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율법은 자기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아 그분의 법이 내 안에서 실현되게 만들어야 완성됩니다. 
자기 힘만으로 지키려는 율법은 항상 한계가 있습니다. 
 
사랑을 행동으로 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인의 힘으로 사랑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항상 한계에 부딪힙니다.
왜냐하면, 자기 욕구가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가 입에 뼈다귀를 물고 주인이 주는 밥을 먹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소유욕이 살아있는데 내어주려고 사랑하려 하니, 결국 이도 저도 안 됩니다. 
 
영화 ‘싱글라이더’(2017)는 일밖에 모르던 한 가장이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진 삶을 무겁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증권회사의 지점장 강재훈은 회사가 부실채권을 팔아 피해자가 많이 생기고 회사가 와해하자 죄책감과 상실감을 느낍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와서 서재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호주로 유학 보낸 아내와 아들의 집 주소를 손에 적고는 술을 마십니다.
그러다 아내와 아들이 보고 싶어 무작정 호주로 떠납니다. 
 
호주에 도착하고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찾아가지만, 집에 아무도 없는 걸 보고 슬쩍 들어가 살펴봅니다.
그러다 아내와 아들이 돌아오는 소리에 급히 집을 나가서 목격한 건 아내 이수진과 아들, 옆집 아저씨 크리스와 그의 딸 일행이 가족처럼 들어와 놀고 저녁을 먹는 모습입니다.
수진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고 그만두었다던 바이올린도 다시 연주를 시작한 상태입니다.
 
다음 날 그는 아내의 애인으로 의심되는 크리스를 미행합니다.
계속 미행하다가 크리스가 한 병원의 병실에 들어갔다 나오는 걸 보고 본인도 들어가는데 거기에는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있는 크리스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재훈은 복잡한 표정으로 병원을 나오고 다시 집으로 간 재훈은 수진이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려고 오디션을 준비하는 걸 몰래 지켜보고 아내가 주체적인 삶을 찾은 모습을 봅니다.
지금까지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던 것 때문에 아주 오스트리아에 남기로 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수진이 오케스트라 면접을 보는 동안 재훈은 수진의 집에 돌아와서는 아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동네 노인의 목격에 의하면 재훈의 아들이 통증으로 쓰러져 크리스가 들어와 발견하고 재훈의 아들을 안고 맨발로 뛰어서 병원으로 데리고 간 것입니다.
 
재훈은 수진과 크리스 몰래 병실에 누워있는 아들을 만납니다. 아들을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아빠 맞냐며 기뻐하고 재훈은 아들에게 괜찮냐며 눈시울을 붉힙니다.
그동안 자신이 아내와 아들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재훈은 크리스와 수진의 불륜 광경을 목격하고 배신감을 느끼고 자리를 떠납니다.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집에 몰래 들어온 재훈은 수진이 작성한 영주권 신청서를 보고 아직도 자신을 남편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에 울음을 터트립니다.
재훈은 잠자는 아들 옆에 누워서 아내와 아들이 매일 즐겁게 지내길 빌고는 집 밖에 나와 오열합니다.
 
아들은 수진에게 아빠가 와서 자신과 얘기했다고 하고, 수진은 그럴 리 없다 하지만 의아해하며 한국 집으로 전화를 하니 벨만 울립니다.
아내 수진은 크리스에게 사과하고 이성으로서의 관계를 거절하고 영주권 신청서를 준비하고 재훈에게 알리려 한국 집에 전화하지만, 통화가 되지 않자 한국 집의 관리소장에게 전화해 비밀번호를 알려줄 테니 남편이 잘 있나 확인해달라 부탁합니다. 
 
남편의 회사가 망한 것을 안 수진은 한국에 있을 재훈을 걱정해 열쇠수리공까지 불러 한국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건 컴퓨터 앞에 조용히 자는 듯 죽어있는 재훈이었습니다. 
 
재훈은 가정을 위해 일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정에 무심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사랑의 일환이었습니다.
그의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일도 잃고 가정도 잃었습니다.
다 사랑 때문에 한 일이었지만 결국 실패하였습니다. 내가 하는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지 참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진도 남편을 사랑했지만, 자신에게 무심한 재훈보다는 옆에 있으며 자신과 아들을 챙겨주는 크리스에게 더 끌립니다.
불륜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신의를 지키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죽었습니다.
수진도 사랑은 했지만, 자기 욕심을 버릴 수 없어서 불륜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내가 하려는 사랑엔 반드시 ‘나’가 살아있어서 그 나의 소유욕, 성욕, 이기심이 발동하기 때문에 항상 이런 결말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부자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마음으로 사랑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스승님, 제가 사랑을 쟁취하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해서 사랑이 된다면 나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만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 자아가 하느님처럼 살아있기 때문에
사랑으로 소유하려던 것을 잃으면 그 절망감에 견딜 수 없게 됩니다. 
 
내가 하려는 사랑은 ‘소유’하려는 마음이기에 항상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소유함은 창조자의 속성입니다.
피조물은 서로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끼리 서로 너는 내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형제끼리 서로 “너는 내 거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형제들 모두의 주인은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예수님의 충고처럼 ‘가진 것을 버리고’, 곧 ‘내가 창조자가 아닌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참 창조자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부모 밑에서는 형제가 나를 미워하고 죽었다고 할 때 나의 생명까지 끊는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니라 부모의 것이고, 나까지 잘못돼 버리면 부모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소유’가 되지 않고 적정한 ‘분리’ 안에서 성취됩니다. 
 
따라서 사랑이 부모가 있는 형제 안에서 더 완전하게 성취되듯,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 안에서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자체이시고 나를 창조하신 주님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할 때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느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소유가 되고 나는 부모의 뜻만 따르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주님으로 인정할 때 모든 것은 하느님 것이 되고 그래서 나의 모든 소유욕이 사라져 마치 태양이 지구를 사랑하듯 상대가 있거나 없거나 그저 사랑의 빛을 보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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