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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8-13 조회수 : 1777

배우자만을 위한 그런 사랑은 없다.
    
오늘 복음은 결혼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혼의 가장 많은 이유가 ‘성격 차이’라고 합니다. 성격의 차이로 이혼이 가능한 것일까요?
성격이 똑같으면 더 못 살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는 질문에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시며,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혼이 많은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배우자를 위해 결혼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배우자만을 위한 사랑이 가능할까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아름다운 사랑의 비극이 있습니다. 
둘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하려다가 로미오도 죽고 줄리엣도 따라서 죽습니다.
이들의 사랑은 상대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약을 먹고 죽은 것처럼 쓰러져 있는 줄리엣을 발견한 로미오는 자신도 자살합니다.
줄리엣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깨어나서 자기 때문에 로미오가 죽은 것을 보고 줄리엣도 자살합니다. 
 
이것이 정말 아름다운 사랑일까요?
상대가 없으면 죽어야만 하는 사랑은 그것 자체로 ‘상대를 위한 사랑’이 아닌
‘나를 위한 사랑’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없어져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죽겠다는 말은 상대를 이용해 나의 행복을 채우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사실 그런 마음으로 결혼을 했어도 그 결혼에 실패합니다.
사랑은 결코 이기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가족들이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사랑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결혼이라는 것이 제 부모를 떠나 새로운 사람과 결합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도 부모를 떠나 사랑을 완성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부모를 떠나서는 절대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더는 행복을 주지 못하면 그런 사랑은 곧 비극으로 끝나고 맙니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거짓으로 나의 행복을 채우려는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아를 버리는 순종적인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아를 통제할 줄 알도록 나를 교육해 준 분들은 부모님입니다.
따라서 부모에게 순종하여 결혼하는 것이 혼자 결정하여 결혼하기 위해 집을 뛰쳐나가는 결혼보다 훨씬 오래갑니다. 
부모를 위한 결혼처럼 보일 수 있어도 누군가를 위한 결혼을 하며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결혼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부모 앞에서만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라도 씁니다. 
그렇게 부모를 위해 사랑하려고 합니다. 
이 정도만 해도 부모와 상관없이 혼자 사랑하겠다는 이기심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결혼도 한계가 있습니다. 
부모를 위한 결혼을 해도 자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기 자식이 이 세상에서 잘 되기를 바라기에 부모의 마음을 따르다가는 자신도 그런 이기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칫 ‘정략결혼’처럼 됩니다. 
 
부모를 위한 결혼을 하는 사람이라면 부모의 마음에 안 들면 자신도 배우자를 마음에 안 들어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부모가 반대하면 결혼도 못 하고 이혼도 못 하고 때에 따라서는 이혼을 해야만 합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부모의 반대로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흔들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기적인 사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요? 
부모도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자기 생존을 위해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히 이타적인 분은 창조자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위한 사랑은 그분의 뜻에 따라 이타적인 사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에게 결혼을 허락받을 줄은 알면서도 왜 하느님께 허락받는 것은 생각하지 못할까요? 
 
팔다리가 없었던 닉 부이치치는 8살 때 이미 자살 시도를 했고 아내의 손을 잡고 걸을 수도 없는 자신과
누가 결혼해 주겠느냐는 걱정을 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닉 부이치치’는 일본계 미국인 ‘카나에 미야하라’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는 미야하라에게 첫눈에 반하여 사랑을 고백했지만, 미야하라는 평생을 그 사람과 함께 살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때 닉 부이치치는 자신들의 사랑을 하느님께 맡겨보자고 합니다.
1년 동안 만나지 말고 1년 뒤에 다시 만났을 때 서로의 사랑이 더 증가하였다면 그것을 하느님께서 사랑을 허락해 주신 표징으로 믿자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미야하라는 단 몇 번 본 그 팔다리 없는 사람을 1년 뒤 더 사랑하게 될 것이란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년 뒤 그녀는 하루하루 닉에 대한 사랑이 더 증가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하느님을 위한 사랑은 하느님을 위하는 마음 때문에 자아의 이기심이 죽으며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하느님 사랑을 닮은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온전히 부모로부터 떠나게 됩니다.
부모가 주는 이기적인 뜻으로부터 떠나게 되어 더는 부부의 사랑이 자신들의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랑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랑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랑은 영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맺어주시지 않는 사랑은 항상 이기적이고 그래서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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