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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8-12 조회수 : 1689

고해성사 수천 번을 해도 죄가 용서되지 않는 경우
    
오늘 복음은 용서에 관한 주제입니다.
임금이 일만 탈렌트, 곧 수조 원의 돈을 탕감해 주었지만, 그 종은 백 데나리온, 곧 수백만 원의 돈 때문에 친구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임금은 돈을 탕감해 준 것을 다시 물립니다.
그러니까 한 번 죄를 용서받았다고 해서 그 용서가 영원히 지속하는 것은 아니란 뜻입니다.
나의 자세에 따라 용서가 번복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언제일까요? 내가 타인을 용서하지 않을 때입니다.
용서는 마치 내가 통로가 되어 받은 용서가 타인에게 흘러갈 때 나의 것이 되는 것이지 받기만 해서는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받는 모든 것을 똑같이 그것을 흘려보낼 때 비로소 나의 것이 됩니다. 
 
‘이방원의 난’이란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개국공신인 정도전을 죽이고 자신의 이복동생인 방번, 방석을 모두 죽이고 자신이 왕의 자리에 오른 사건을 말합니다.
이방원에게 이런 힘을 실어주었던 것은 부인 민씨의 가문이었습니다.
민씨 가문은 이방원을 임금으로 추대하여 권력을 쥐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민씨에게는 얼굴이 어여쁜 김씨라는 여종이 있었는데 민씨는 장차 임금이 될 이방원이 여종에게 마음이 빼앗기지 않도록 얼굴을 싸매고 다니도록 하였습니다.
민씨에게 아들이 태어나면 권력이 또 양분되어 형제간에 칼부림이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집에 살면서 여종의 그러한 행색을 보지 못할 리 없는 이방원은 그 여인에게 푹 빠지게 됩니다. 
 
민씨는 여종을 죽이는 대신 내쫓아 사라지게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을 안 이방원은 아내에 대한 분노로 가득합니다.
어쨌든 이방원은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태종 임금이 됩니다.
그리고 민씨는 원경왕후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때 태종은 한 사람을 부르는데 아기를 안고 나타난 김씨입니다.
태종은 이미 김씨를 찾아 아기를 출산한 것입니다. 그리고 효빈 김씨로 후궁으로 삼습니다.
분노하는 민씨 세력에 태종은 후궁들을 더 들여 권력을 분산하여 민씨 세력의 휘둘림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출처: ‘태종 이방원이 아내 원경왕후의 눈을 피해 취했던 미모의 여종’, 유튜브, ‘야사TV’] 
 
김씨는 권력을 쥐기 위해 태종을 독차지하려고 했습니다.
결과는 그 시샘 때문에 오히려 태종의 마음을 잃게 된 것입니다.
만약 태종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물론 후궁을 두기는 하였을지라도 자신을 그 자리에 있게 만든 민씨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접지 않았을 것입니다.
흘려보내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내가 소유할 능력이 있다고 믿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 생명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흘려보내는 것만 내 것이 됩니다. 
 
만약 돈을 엄청나게 벌어놓고 하나도 쓰지 않고 죽었다면 그 사람은 돈은 소유했던 것일까요?
돈은 쓰는 것만 나의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휴짓조각에 불과합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모기가 태어나서 피를 좋아하는 욕구를 받았는데 이것을 쓰지 않았다면 그 욕구는 자신의 것일까요? 굶어 죽습니다.
무엇이든 쓰는 것이 나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두 커다란 호수가 있습니다.
흘려보내는 갈릴래아 호수이고 모아들이기만 하는 사해라는 호수입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생명의 바다이고 사해는 죽은 바다입니다.
이 큰 상징적인 지형만으로도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로 가라고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흘려보내지 않는 용서는 나의 것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수천 번 고해성사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 고해성사로는 용서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처럼 내가 받은 용서를 흘려보내 주지 않으면
다시 용서받지 못한 상태가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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