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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8-11 조회수 : 1610
몇 달 전에, 하나의 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였습니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한 남성이 담배를 피우자, 한 시민이 담배를 피우면 어떻게 하냐면서 말렸습니다. 그래도 계속 담배를 피우자, 손에 든 담배를 빼앗았습니다.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말립니다. 그 뒤, 이 남성이 했던 말들입니다.

“그건 제 마음이잖아요.”, “솔직히 연기 마신다고 피해 많이 가요?”, “** 꼰대 같아.”….

술에 취해서 했던 행동도 아니었습니다. 맨정신에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생각에 그러한 행동을 했고 또 떳떳하다고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자기 혼자만 살고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자기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함께 살아야 해서 당연히 공동의 선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으며, 세상은 혼란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종종 착각하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하면서 사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러나 함께 살기에 그 많은 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지금 머무는 집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기 혼자서 만들 수 있나요? 아마 많은 이가 누가 만들어 준 집에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먹고 있는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생산해서 만든 것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생산한 것을 가지고 또 누가 요리해준 것을 먹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따져봐도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주님께서도 이 사실을 잘 아셨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많이 들어본 구절 같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마태 16,19에 나오는 베드로에게 주어진 ‘열쇠의 권한’이었습니다. 그 구절과 이 구절이 똑같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베드로에게 주어졌었던 권한이 이 말씀을 듣는 청중, 곧 공동체에게 부여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에게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공동체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만 사는 것처럼, 나의 욕심과 이기심만을 내세워야 할까요? 아닙니다. 나의 구원이 공동체에 주어졌기 때문에, 이 공동체를 위한 나의 모습 자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시지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바로 교회의 최소 구성원입니다. 모든 공동체 안에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공동체를 위해 내가 해야 할 것에 충실해야 합니다.

행복한 방법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으로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아직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해지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 삶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솔직히 더 많은 것을 갖고, 더 높은 곳에 올라야 행복할 것 같지만 이는 늘 순간의 행복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만족일 뿐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래서 영속적이고 자신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자신을 비난하지도 않고, 누가 훔쳐 갈 수 없는 그런 대상을 원해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 대상이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을 소유해야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소유하려면 내면의 일치가 필요합니다.

사랑이 그 해답입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사랑의 실천을 통해 우리는 내면의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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