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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8-10 조회수 : 1792

존재 소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 창조의 도구로 쓰이는 것
    
오늘은 성 라우렌시오 부제 축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성 라우렌시오 부제는 당시 교황청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황제가 재산을 다 가져오라고 했을 때 그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자신은 뜨거운 석쇠에 순교하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 많은 열매를 맺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 하십니다.
그러려면 먼저 자기 목숨을 미워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밀알은 필연적으로 썩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생명을 소비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생명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영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에서 창조자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르단강 계곡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곧고 훌륭히 자랐고 다른 하나는 볼품없었습니다.
두 나무는 예루살렘 성전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 여겼습니다.
드디어 다 자란 두 나무는 잘려져 각자 필요한 곳으로 갔습니다.
곧고 잘 자란 나무는 정말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매일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볼품없었던 나무는 말 먹이통으로 쓰였습니다.
매일 더러운 음식을 받아내야만 하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밤에 한 아이가 구유 위에 놓였습니다.
아기가 놓였고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경배하였습니다. 
성전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뻤습니다.
 
그 아기가 성인이 되었고 성전에서 이 성전이 완전히 허물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영광을 받던 나무는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리고 자기 소원대로 사람들이 그 사람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 로마 군사들이 쳐들어와 성전을 완전히 허물어버렸습니다. 
그 나무는 불타서 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구유를 들고 로마로 가져갔습니다.
싼타 마리아 마죠레 성당이 지어졌고 그 볼품없는 구유는 성당 제단 밑에 모셔졌습니다.
2천 년이 흘렀지만, 그 볼품없었던 나무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다인들이 지은 성전엔 하느님 법이 없었습니다.
공경을 받는 것을 즐기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내어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여전히 피조물로 남은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소멸합니다.
열역학 제2 법칙에 의해서입니다.
모든 존재는 쓰레기가 되어가고 사라져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구도 소멸할 것이고 태양도 소멸할 것입니다.
태양의 수명은 100억 년이고 지금 50억 년을 살았으니
이제 50억 년 남은 것입니다.
 
모든 별이 그렇듯 지구도 소멸해 가고 있습니다.
지구 내부의 열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는데 그것이 다 빠져나가면 부스러기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인간 때문에 먼저 사라질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에너지’를 조금씩 잃어갑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건물은 허물어지고 기계는 낡고 사람은 땅이 됩니다. 그리고 그 땅도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따라서 피조물의 위치에 있다면 누구든 소멸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를 모셨던 나무는 자신을 소멸하여 누군가에게 포근함을 선사하였습니다.
나를 죽여 타인에게 생명과 행복을 주는 일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은 창조자의 속성입니다.
사랑하면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모기처럼 살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창조자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창조자의 것입니다.
사랑이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생각해봅시다.
자동차는 가만히 놓아두면 흙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인간이 기름을 넣고 고치며 잘 사용하면 그 차는 아주 오래 사용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협력하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삽이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농부는 그 삽을 소멸하도록 내버려 둘까요, 아니면 잘 보존할까요?
당연히 하나의 피조물이지만 자신의 창조 활동에 협조하기 때문에 자신이 창조 활동을 하는 한
그 삽은 보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엔 딱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습니다.
피조물과 창조자입니다.
모기와 예수입니다.
생존하려는 자와 죽으려는 자입니다.
사랑이 없는 자와 있는 자입니다.
사랑하면 그 본성상 창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존재하는 한 창조는 영원히 지속하고 그 창조가 지속하는 한 그 창조를 위해 쓰이는 도구들도 영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창조’는 나의 에너지를 내어주는 것이기에 곧 ‘나의 죽음’을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명을 미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창조의 협력자가 됩시다.
어차피 다 죽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투자해 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영원히 살 수도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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