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부터 계산해 보면, 가톨릭의 역사는 자그마치 2,000년이 넘습니다. 그렇다면 가톨릭이 가장 순수했을 때는 언제였을까요? 즉, 예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여 전체가 사랑의 실천에 온 힘을 기울였을 때는 언제였을까요?
“그런 시간이 없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순수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처음 박해를 받았던 300년 동안의 시간은 정말로 순수하게 주님의 뜻을 따른 시기였다고 합니다. 다른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고, 가장 소중한 주님의 뜻을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 똘똘 뭉쳤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예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박해 시대의 우리 선조들은 순수하게 주님의 말씀에만 집중했습니다.
모든 것이 마련되는 순간만이 주님을 따르는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갖은 방해로 가득해서 어렵고 힘든 것들이 너무 많았던 때가 주님과 순수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렵고 힘든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 자기에게 벗어나기만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만 지나면 더 열심히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고통과 시련의 시간에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상황에서도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병자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와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합니다. 불 속 그리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또한 어떤 사람도 고치지 못하기에 절망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충분히 포기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기보다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가장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예수님으로부터 커다란 은총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은 산을 옮길 정도로 힘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지는 삶은 모두 다릅니다. 그 모든 상황에서 주님께서는 분명히 함께하십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만이 아닌, 기쁘고 행복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주님께서는 함께하십니다. 어떠한 순간에서도 함께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 주님과의 순수한 만남을 가질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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