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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8-06 조회수 : 1951

하늘 나라 행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가까워질수록 커진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주님의 변모입니다.
마르코 복음은 바로 직전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마르코는 높은 산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오심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이 새하얗게 빛났다는 말은 그분의 본성이 빛이심을 볼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옷은 그분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사제는 사제 옷이 있고 법관은 법관 옷이 있으며 경찰관은 그에 합당한 옷을 입습니다.
옷이 변했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빛 자체이신 하느님으로 볼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해 제자들을 산 높이 데리고 오르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정체성을 온전히 볼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여겼는데 성체를 영하며,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하실 때 그분의 새로운 정체성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라 믿고 성체를 영했지만, 그전에는 그저 비타민처럼 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믿고 이해하기 전까지는 하늘 나라를 완전히 차지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늘 나라는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배반하고 나서 비로소 그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피를 흘리셨음을 깨달았을 때 옵니다.
다시 말해 산에 오른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인간을 구하시기 위해 흘리신 당신 피임을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재벌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돈 버느라 바빠서 아들 하나 있는 것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들은 그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개망나니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돈을 물려주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직접 한 달 동안 일을 해서 번 돈을 가져오면 내가 모든 재산을 너에게 물려주마.
그렇지 않으면 내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아들은 한 달 동안 놀다가 어머니에게 돈을 좀 달라고 하여 이것이 자신이 번 돈이라고 거짓말을 시키며 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돈을 벽난로에 집어 던졌습니다.
아들은 황당했습니다.
아버지는 “다시 벌어 오너라.” 하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한 달 동안 놀다가 또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하여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그 돈을 벽난로 불에 던졌고 아들은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하다가 아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래, 아버지나 나를 감시하는 것 같다. 다 아시는구나. 돈 한 번 벌어보지 뭐.’
건설 현장에서 손발이 부르트고 온몸이 매를 맞은 듯 아픈 것을 참으며 한 달을 버텨 자신이 직접 번 돈을
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 돈을 난로에 집어 던졌습니다.
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돈을 꺼내기 위해 불 속에 손을 넣었고 타들어 가는 돈을 끄집어내어 불을 껐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들은 손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제야 아버지는 “고생했다.
아들아. 내 모든 돈은 다 너의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가 주는 재산의 가치를 모를 때는 아버지가 아무리 큰 선물을 줘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알게 되면 아버지가 주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가치가 됩니다.
그때 참으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높은 산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려가시는 이유는 바로 당신께서 흘리실 피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과정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고 시나이에서 계약을 맺게 해 준 것에 아무 고생도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파라오를 섬길 때 더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엘리야가 아합 왕 밑에서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바알 예언자들과 싸워 이겨
그들의 목숨을 거두는 과정이 쉬웠을까요? 하지만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길 때가 더 좋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흘린 피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흘리신 피의 가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두 방법이 있는데 묵상을 통해서, 그리고 실천을 통해서입니다.
그리스도 수난의 가치를 묵상하고 나도 이웃의 죄를 위해 피를 흘려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죄를 씻기 위해 흘리는 피의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됩니다. 
 
일본 어떤 선생님은 어둠의 세계로 빠지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손가락까지 잘라야 했습니다.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입니다. 밤에 돌아다니는 선생님으로 유명한 그는 일본에서 죽음과 가장 가까이 서 있는 교사로 불립니다.
밤에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선도하기 위해 마약중독, 매춘, 야쿠자와 관련이 있던 학생들이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느 학생이 야쿠자 조직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하자 야쿠자 두목이 “손가락 하나를 두고 가라.”라고 협박하였고 오사무 선생은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고 학생을 구출했습니다. 
심지어 그 학생은 일본인도 아니고 대만 유학생이었습니다.
오사무씨는 마약 상인에게 옆구리를 찔리고 엄지손가락이 잘리는 등 숱한 위협을 받으면서도
13년 동안 밤거리에서 학생과 만났고 5000여 명의 학생을 다시 ‘낮의 세계’로 불러들였습니다.
 
“손가락 하나를 잃는 아픔은 매우 컸지만 한 소년의 미래를 위해 내 손가락 하나쯤은 희생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밤거리에서가 아니라 이 선생님의 사랑과 희생에서 하늘 나라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자신이 귀한 존재임을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손가락을 잘리는 고통을 거부한다면 선생님 희생의 가치를 모를 것이고
그만큼 덜 행복해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웃을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이웃을 위해 피를 흘리는 만큼 우리 행복은 커집니다.
이것이 높은 산에 올라 조금씩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보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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