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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7-20 조회수 : 2302

모든 욕구는 부여받았고 생존을 위한 것임을 인정한다면 이런 결론에 이른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매몰차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중략)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한 가족이 되려면 아버지의 뜻이 있어야 하고 그 뜻을 따르는 어머니가 있어야 하며 또 그 뜻을 따르는 자녀들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아버지가 그런 가정을 원하지 않는다면 어머니는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합니다.
아무래도 자녀는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을 다 받고 자랄 수는 없게 됩니다. 
 
어머니가 아버지 뜻을 따르지 않고 다른 가정을 원하거나 자녀를 괴롭힌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버리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가정에 면면히 흐르는 것은 ‘아버지의 뜻’입니다. 
 
‘뜻’은 하나의 욕구입니다. 욕구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만약 욕구가 저절로 생겨난다면 저는 진화론을 믿을 것입니다.
욕구는 생존과 맥락을 함께 하고 생명이 태어나는 것처럼 욕구도 태어납니다. 
생명이 없으면 욕구도 없습니다.
욕구가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생명이 저절로 생겨날 수 없는 것처럼 욕구도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주어지는 것입니다. 
 
부모 없이 태어나는 생명체 하나만 데려오십시오.
그러면 욕구도 저절로 생겨난다는 것을 믿고 진화론을 따르겠습니다.
저절로 생겨나는 생명도 없고 그래서 저절로 생겨나는 욕구도 없습니다. 
다 부모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욕구에 대해 지금까지 가장 완전하게 정리했다는 사람이 아브라함 매슬로입니다.
그는 욕구의 단계를 두고 아래 욕구가 충족되면 위 욕구로 나아간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우선적인 욕구는 ‘생존 욕구’라 합니다. 1단계로 먹고 자는 욕구입니다. 2단계는 안전 욕구입니다.
먹을 것이 해결되면 안전한 곳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생존 욕구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해결되면 3단계로 소속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고 합니다.
가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4단계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생긴답니다. 마지막으로는 아무리 인정받아도 자신이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5단계는 자아실현 욕구입니다. 
자아실현 욕구는 동물들의 무작정 생존만 하려는 욕구보다 훨씬 고귀한 욕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이론입니다.
‘모든 욕구는 다 생존 욕구이고 이 욕구들에는 단계가 없습니다.’
자아실현 욕구가 해결되면 생존에 대한 욕구는 해결된 것일까요?
자아실현 욕구를 쫓다가 생존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자아실현 욕구도 다 먹고 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존 욕구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배트맨: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히스 레저’를 압니다.
역대 영웅 장르에서 연기상을 받은 경우가 없다고 합니다.
조커 역할을 얼마나 잘했으면 처음으로 아카데미에서 상을 주었겠습니까?
이 영화에서 조커를 보면 지금도 꿈에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연기가 완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상식 때 히스 레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 이 영화가 개봉하여 엄청난 흥행이 되는 것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언제나 완벽한 내면 연기를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흥행 수입을 올리는 스파이더맨의 역할도 거절했습니다.
그는 상도 돈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이혼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연기로 인정받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의 연기가 완벽하지 못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연기를 통해 자기만족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조커의 연기를 어떤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해놓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약물을 지나치게 복용하여 숨지고 만 것입니다.
 
현실이 이런데도 자아실현 욕구는 가장 윗 단계에서 있으므로 생존 욕구가 해결된 상태에서 추구하는 욕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욕구는 생존을 위한 욕구이고 이 다섯 가지 중 하나라도 결핍되면 생존에 문제가 생깁니다.
배가 고파 죽거나 외로워 죽거나 자기에게 만족하지 못해 죽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아버지의 뜻으로 모인 한 가족입니다.
아버지의 뜻도 하나의 ‘욕구’입니다.
아버지의 욕구는 서로 사랑하여 상대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누군가를 살리는 양식이 되라는 욕구입니다.
이 욕구는 분명 아브라함 매슬로가 말한 생존 욕구와 반대되는 욕구입니다.
분명히 이 욕구를 따르다 보면 이태석 신부님처럼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자기는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우리를 죽게 만드는 욕구를 넣어주셨을까요?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모든 욕구는 생존을 위한 욕구이고 그 욕구는 부모로부터 부여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뜻, 곧 서로 사랑하라는 욕구는 나를 죽이는 욕구임에도 무엇을 위한 생존 욕구일까요?
우리는 그것이 육체가 아닌 ‘영혼’임을 압니다.
따라서 육체를 살리려는 욕구를 따르면 영혼은 죽을 것이고, 영혼을 살리려면 육체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이 영원히 사는 법을 알려주러 오셔서 십자가에 아버지 뜻을 위해 당신을 죽이셨습니다.
 
부모가 아니면 생명과 욕구를 넣어줄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뜻을 넣어주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는데 바로 가르침과 양식입니다.
이를 하느님께서 주실 때는 진리와 은총이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욕구가 들어오고 그 욕구는 육체가 아닌 영혼을 살리는 생존 욕구입니다.
부모가 넣어주는 욕구가 그 생명을 죽이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영원히 살기를 바라며 사랑의 욕구를 넣어주셨습니다.
그 욕구는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이제 하느님 아버지의 뜻으로 만들어진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가족 공동체가 됩니다. 
 
모든 욕구는 주어진 것이고 그 욕구를 받으면 그 욕구를 준 부모만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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