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형제님이 제게 묻습니다.
“신부님,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워낙 가리는 음식 없이 잘 먹는 저입니다. 그래서 아무것이나 다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래도 지금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을 것 아니에요?”라고 물어보십니다. 바로 그 순간, ‘떡볶이’가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떡볶이요!”라고 대답했더니, “남자가 무슨 떡볶이에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신부와 점심 식사를 같이하러 밖에 나갔습니다. 무엇을 먹을지 고르다가 제가 “파스타 먹으러 갈까?”라고 하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남자끼리 어떻게 파스타를 먹어요?”
남자가 떡볶이를 먹으면 안 되고, 남자끼리 파스타를 먹으면 안 되는 법이 있을까요? 깜빵 갈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데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라는 식의 편견이 우리의 생각 안에 많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아서 새로운 변화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변화를 추구하는 이를 오히려 커다란 죄인 취급을 합니다.
일상 안의 고정관념 탈피가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쫓아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쫓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좋은 말씀을 듣기 위해서일까요? 그냥 좋은 구경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행동들, 즉 사람을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또한 배부르게 먹여주는 등, 인간의 눈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음식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필사적으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막무가내식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향해 짜증도 나고 미움의 감정도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감정을 가지셨음을 복음은 이렇게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어떻게든 사랑을 주시려는 주님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따르지 않아도, 다른 이유로 당신을 따르고 있다 하더라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에 가엾은 마음을 간직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큰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어떤 선입견도 품지 말고, 주님의 뜻인 사랑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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