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집에 질투가 심한 사람과 몹시 인색한 사람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질투와 인색함은 서로 함께 잘 살도록 도움을 주었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예상대로 허구한 날 둘이 싸웠고, 이 점을 마을 사람 모두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이 이 둘을 화해시키려고 불러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원하는 것을 내가 모두 들어주마. 그런데 먼저 청하는 자에게는 하나를 주고, 나중에 청하면 그것의 두 배를 주겠다.”
이 둘은 어떻게 했을까요? 소원을 이야기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이 두 배 얻는다는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대방이 먼저 이야기하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말을 하지 않자 임금은 질투가 심한 자에게 먼저 말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잠깐 머뭇거린 질투가 심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제 눈 하나를 뽑아주십시오.”
먼저 말한 사람의 두 배를 상대방이 받는다는 말에, 자기의 눈 하나가 뽑히면 상대는 두 눈을 잃게 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지요.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 좋은 꼴은 보지 못하겠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남의 이익을 보지 말고, 호의를 베풀어 준 임금을 봤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질투를 없애고 인색함도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계속해서 남의 이익만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질투가 넘쳐나고 인색함이 멈추지 않게 됩니다. 우리도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베풀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질투와 인색함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에 충만해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배척하듯이 제자들을 배척할 사람들의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바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질투와 인색함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사랑의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 주님의 보살핌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기에 두려움 없이 힘차게 복음을 전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는 주님의 호의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보살핌을 받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는 순간까지…. 단 한 순간도 주님의 보살핌이 없었던 적은 없습니다. 내가 가장 힘들다고 여겼던 그 순간에도 생각해보면 주님께서 분명히 함께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세상의 모든 질투와 인색함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랑 가득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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