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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7-09 조회수 : 2339

살기 위해 수영을 배우려는 친구가 있거든 물고기가 되는 법을 알려줘라
 
오늘 복음은 세상 속에 속한 교회가 가져야 하는 세계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 속으로 파견하시며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양들이 이리들의 마음에 들려 하고 그들에게 속하려 한다면 결국엔 잡아먹히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이렇게 권고하십니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뱀이 사람을 믿으면 될까요? 맞아 죽거나 술에 담기게 됩니다. 비둘기가 사람을 믿으면 될까요?
언젠가는 사람들의 음식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이 우리에게 연민을 가진다고 여겨도 절대 믿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영화관에서 본 영화 중 기억에 많이 남는 영화가 있습니다.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한공주’란 영화입니다. 
 
한 여학생이 많은 어른에게 둘러싸여 전학을 강요받습니다.
이름이 ‘한공주’인 이 여학생은 그 어른들에게 눌려 이렇게 말합니다.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잘못한 게 없지만, 세상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이미 더럽혀져 자기 자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 학생일 뿐입니다. 
 
이때 한 젊은 남자 선생님이 한공주를 데리고 자신의 집에 어머니와 함께 살라고 데려다 놓고 갑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이 무슨 잘못으로 전학 온 지도 모르는 그런 아이와 한집에 살아야 하느냐고 거부를 합니다.
그러나 교육부에서 생활비를 보조해준다고 하니까 받아들입니다.
성질이 사나운 분이지만 한공주는 이 어머니와도 잘 사귀어갑니다.
 
한공주는 우선 ‘배신자’라고 부르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만나러 갑니다.
전화번호까지 바꿔놓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간신히 어머니가 있는 작은 마트로 찾아갑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지금 간신히 재혼해서 사는 자신도 힘드니 엄마를 위한다면 앞으로 찾아오지 말라고 딸에게 몇만 원을 주며 밀쳐냅니다.
 
전학 온 학교에서 한공주를 아무 이유 없이 잘 대해주는 친구가 생깁니다.
물론 한공주의 아픔이 어떠한 것인지도 모르는 천주교 신자 친구. 한공주는 그 친구를 통해 세상과 대화를 시작합니다.
이 천주교 친구는 한공주에게 어떤 아픔이 있건 자신이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말합니다.
 
한공주는 수영을 배웁니다. 물에 뜨는 것은 다 할 수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그러나 잘은 안 됩니다.
그렇더라도 필사적으로 수영을 배웁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수영을 배우는 것은 바로 비정한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는 자신의 처지를 상징합니다. 
 
그렇게 큰 아픔을 치유해가며 세상에 다시 발을 붙이려는 순간 그녀의 아버지가 찾아옵니다.
느닷없이 어떤 서류에 사인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재판 중인 그녀의 가해자 중의 한 명에게 돈을 받고
탄원서를 써 주기로 한 것입니다.
한공주는 사인을 해 줍니다.
아빠는 그렇게 그 가해자들이 준 위로금으로 흥청망청 살아갑니다. 
딸의 아픔을 이용하는 아빠...
 
그 와중에 어떻게 알았는지 그 수십 명의 가해자의 부모들이 자신들에게도 탄원서를 써 달라고 학교로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일어난 대소동. 아무 죄도 없이 학교에서까지 쫓겨 다녀야 하는 한공주. 
 
교장 선생님은 한공주가 그런 연유로 전학 온 지 몰랐다고 하며 학교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근신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함께 살던 집 아주머니가 사귀고 있던 파출소 소장은 그 아이가 어떤 일을 당한 아이인지 일일이 다 이야기해주고,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그 아이를 내보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한공주는 그 집에서도 발붙이지 못하고 찜질방에 가서 머물게 됩니다.
부모님도, 학교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모두 한공주를 받아주려고 했지만, 그녀의 현실 앞에서는 각자의 길을 가고 맙니다. 
 
결국, 자신을 그렇게 잘 대해주었던 천주교 신자인 자신의 유일한 친구에게 전화를 겁니다.
하지만 그녀도 전화를 받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한공주를 성폭행을 하며 찍어놓은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였는지는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평범하게만 살고 싶었던 한공주는 짐 가방을 들고 한강 다리를 걷습니다.
자신과 함께 당했던 친구가 이미 그렇게 했듯이, 자신도 물로 뛰어드는 것 외에는 세상에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뛰어듭니다.
물 위로 다시 떠 오릅니다.
이때 다시 생겨나는 살고 싶은 욕망. 그래서 그동안 배웠던 수영을 시도해 봅니다.
하지만 한강의 빠른 물살에는 역부족입니다.
다시 물속으로 잠깁니다.
그렇게 다시 떠오르지 못합니다. 
 
이 영화가 한공주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요?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어쩌면 나도 어느 정도는 세상에서 이런 느낌을 받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있지만 결국 집처럼 나를 맞아줄 사람은 한 명도 없는 세상. 
 
한공주는 수영을 배우기보다는 물고기가 되어야 했습니다. 뱀은 어차피 뱀입니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본인이 뱀임을 인정하고 뱀들이 사는 굴을 찾았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에서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미움과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과 화해하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둘기처럼 그들에게 물들려 하거나 그들에게 공격을 당할 때 날갯짓 몇 번으로 그들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사막의 교부 안토니오 성인은 사막에 살면서 세상에서 복음을 전한 후 지쳐 다시 사막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막에 함께 머무는 수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고기가 뭍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는 안 되지.”
 
세상은 이리 떼이고 우리는 양들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리에서 양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파견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세계관을 가지지 못하여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면 자신도 이리가 되거나 이리에게 먹히는 일이 발생합니다. 
 
나는 교회에서 물고기이고 세상에 나아가 잠깐 선교하고 다시 물로 돌아와야 하는 처지임을 명심합시다.
그것이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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