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닐 때, 제가 사는 동네에 커다란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파트를 짓는다고 합니다. 층수가 자그마치 15층, 높아서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되는 고급 아파트라고 합니다. 지금이야 15층 하면 그렇게 높다고 하지 않겠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높은 층수였습니다.
이 아파트가 세워지고 입주가 시작되면서 친구들과 아파트로 놀러 갔습니다. 이 아파트에는 근사한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흙바닥에서 고무공 가지고 놀았던 당시에 이 놀이터는 신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몇 번만 들어갈 수 있었고, 얼마 뒤부터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세워지면서 우리의 아파트 입장도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우리 집도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졸랐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아파트 내에 외부인이 들어가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거주민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아파트 단지 내 정원만 개방해도 굳이 공원을 만들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 것’이라는 생각, 남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의 부재가 중복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랑의 마음, 나눔의 마음이 우리 모두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기적인 욕심이 우리를 계속해서 갈라놓습니다.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집이나 고을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저를 털어 버려라.”
발밑의 먼지를 터는 것은 고대 근동 사람들이 결별의 뜻으로 하던 몸짓이었습니다. 즉, 부당한 고을,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합당하지 않은 고을에서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심판의 날에 외면받을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십니다.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구원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사랑의 마음, 나눔의 마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주님의 자리를 비워나갑니다. 그래서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받아들이는 삶을 사십니까? 아니면 주님을 거부하는 삶을 사십니까?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게만 집중하고 있으면, 절대로 주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사랑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주님과 함께하면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구원의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또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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