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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7-08 조회수 : 2764

주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믿을 때 생기는 위험성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복음선포로 파견하십니다. 
그때 우선 주는 것에 대해 아끼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받은 것을 그대로 내어주는 모범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주는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주되 받아내는 것도 무시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주면 반드시 받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동네에 들어가던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그 집에만 머물라고 하십니다.
다른 집들도 분명 무언가 내놓고 싶을 텐데 한 집만 거덜 내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한 집에서 받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많이 받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일꾼에게 아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부러움을 사게 될 것이고, 그가 주님의 일꾼에게 대하는 신자의 모범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면서도 받아내야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겠는데,
하나는 ‘자신이 당연히 받기만 하면 되는 줄 알게 된다.’라는 이유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는 반대로 ‘받기만 하다가는 부담이 되어 상대를 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느님도 선악과를 받으려 하셨습니다.
그런 이유는 내어놓지 않는 상태에서 주기만 하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첫 조상들은 당연히 받기만 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자신에게서 떠나게 하고 싶다면 주기만 해서 부담스럽게 만들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주기만 하고 받으려 하지 않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주는 것의 목적은 그 사람도 내어놓을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며칠 전 저의 신학교 입학 동기였던 한 사제가 평화방송에 나와서 7성사에 대해 설명하며 자신의 성소(하느님의 부르심)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유재선 안드레아 신부는 어려서부터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커서는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신학생과 한 방에 자게 되었는데 유재선 어린이는 신학생으로 사는 게 좋냐고 물었고 그 신학생은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며 한번 신학생이 되어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신학교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자신을 다 내어놓을 수는 없었는지 거의 사제가 될 즈음 8년 만에 신학교를 나오게 됩니다. 
 
그러자 이번엔 그에게 신학교 입학 추천서를 써 주었던 아버지 신부님이
“내가 기도를 해 봤는데, 넌 어떤 식으로든 사제가 될 거라는 답을 받았어.”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물론 그 말을 믿지는 않았는데, 어찌어찌하다가 프란치스코 전교봉사회에 입회하게 됩니다. 
 
그런데 삶이 신학교 때보다 더 힘들어서 한 1000번은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 했다고 합니다.
결국, 종신서원을 얼마 남기지 않고 떠나려는 찰나에 십자가에서 어떤 음성을 듣고는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님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서원을 하게 됩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일은 우리가 더 많이 가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내어놓게 하시는 일입니다. 
더 많이 가지려고 주님께 가다가는 잘못된 주님을 섬기게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예수님께 당신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쏟아내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 이것이 하느님 사랑의 최종목표입니다.
 
신원조회도 안 되는 산속에서 40년 동안 홀로 살아온 할머니가 있습니다. 
남이 버린 음식을 주워와 먹으며 살았는데 조현병 증세까지 보였습니다. 
 
제작진들이 완강한 할머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추운 겨울에도 텐트에서 버티며 열흘을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는지 자신이 한 밥을 나누어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역시 그 밥도 보통 사람이 먹기는 역겨울 수 있으나 제작진은 맛있게 먹어줍니다.
할머니께서 조금씩 내어놓을 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자신의 음식을 먹어준 제작진의 소원대로 병원을 가기위해 산을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참사랑은 이렇게 자신의 것을 내어놓을 수 있을 때까지 끈질기게 계속됩니다.
내어놓을 수 있으면 순종도 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도 이처럼 누군가와 함께 머물며 내어놓을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자신들에게 순종할 수 있고
그리스도께 순종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도록 파견된 것입니다. 
 
대화할 때 혼자만 이야기하면 그것이 대화일까요? 상대도 말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방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을 넘어서서 내어놓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감사의 마음을 일으켜 내어놓게 하시지만, 우리 또한 주님의 기도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 내어놓게 청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주어도 내어놓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떠나는 것이 옳습니다.
내어놓는 빈 곳에 주는 이의 것이 채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내어놓는 공간에 상대의 것을 채우는 것이 관계입니다.
그래야 상대 안에 내가 살고 내 안에 상대가 살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방법입니다.
 
주고받음이 없이는 어떤 관계도 형성되지 않고 그래서 복음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기쁘게 내어놓게 만드는 사람이 진짜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받는 것도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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