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호수를 건너 가다라 지방으로 가셔서 무덤에 사는 마귀 들린 사람들을 만나신다. 마귀 들린 이들은 우상 숭배에 빠진 이들을 의미한다. 쇠사슬에 묶여 무덤에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느님을 멀리하고 자신의 죄라는 쇠사슬과 죄라고 하는 차꼬에 묶여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29절)한다.
그가 말하는 때는 “메시아의 때”로서 마귀가 정복당하는 때를 말한다. 그러면서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31절)하고 간청한다. 돼지 떼는 호수 가까운 곳에서 아무 것이나 주워 먹으며 세상의 죄에 따라 살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이 속된 호수 가까이 사는 그들은 오류와 무절제한 욕망에 젖어있어서 쉽게 마귀들에게 정복당하고 만다.
예수께서는 “가라!”하고 명령하셨고, 마귀들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 돼지 떼는 물속에 빠져 죽는다(32절). 이러한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보고는 저희 마을에서 떠나달라고 간청하였다(34절)고 전하고 있다. 하느님을 모르고 예수께서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현존 그 자체가 도전이며, 하나의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떠나달라고 하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물론 깨끗이 치유된, 크나큰 고통을 당했던 그 마귀 들렸던 사람도 보았지만, 예수님께 자기들을 떠나가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기 때문에 그분과 함께하는 것이 처음부터 받아들이기 힘든 도전으로 두려움으로 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것보다도 그분과 만나기조차 꺼리는 것이다.
순간적이고 현세적인 손해가 아까워 구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달라고 했던 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었는가? 믿음이 없었던 그들처럼 우리도 세상을 구원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우리의 마음의 고장에서 떠나달라고 하지나 않았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의 삶이 주님께 우리를 떠나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삶이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하겠다.
우리는 언제나 매 순간 하느님의 뜻 앞에 서 있다. 이 하느님의 뜻은 하나의 십자가의 도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십자가를 어떻게 처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느냐가 중요하다. 그 십자가가 영광을 줄 줄 알지만, 그 과정이 두려워 그 십자가를 버려야 할까? 아니면 그 도전에 순순히 응답함으로써 영광을 누릴까? 진지한 마음으로 주님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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