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을 지어야 할지 학교를 지어야 할지 고민하는 교회가 되어야!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이 위대한 두 성인을 같은 날 기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 베드로는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성 바오로는 선교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성 베드로는 교회로 모여야 하는 의미를 말해주고 성 바오로는 교회 밖으로 나가 선교해야 하는 의무를 말해줍니다.
마치 교회가 심장이라면 성 베드로는 심장 안으로 피가 모여야 함을 말해주고 성 바오로는 그 피가 다시 혈관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야만 함을 말해줍니다.
둘 중의 하나만 빠져도 우리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둘이 하나이고 따라서 오늘 두 성인을 동시에 기념하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 안에 성 베드로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교회 안에서만 봉사하고 밖으로는 나가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어떤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은 교회 안에서 봉사도 열심히 하였고 미사나 고해성사를 꾸준히 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신앙이 이상해졌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매일 성경책을 펴서 거기에서 나오는 말씀을 주님께서 자신에게 해 주시는 말씀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식 이야기가 나오면 밥을 먹지 않고 번제 이야기가 나오면 분명 누군가는 불에 타야 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철저하게 믿었지만 실상은 거의 정신착란까지 간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성경을 점을 치는 행위와 같습니다.
성당이 아니라 점집에 다녔던 것입니다.
본인은 하느님 말씀에 충실하다고 믿었지만, 가정이 파탄 날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내면에 베드로는 살지만, 바오로는 살지 않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 사람은 하느님께 가서 내어놓을 게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에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구원해 오라고 우리를 파견하셨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충실히 따르려고 하면서도 결국 선교를 제일 큰 목적으로 삼지 않으면 내가 머무는 교회는 점집이 됩니다.
돈 받고 그들 귀에 좋은 이야기만 해 주는 점집 같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내 안에 바오로만 있다면 어찌 될까요? 나주 율리아처럼 교회와 단절된 상태에서 헛된 것을 전하게 됩니다.
어떤 분은 마치 자신이 예언자나 된 것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을 받고 예언을 해 줍니다.
사람을 자신에게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사람들을 성체의 힘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혈관이 피를 통과시키지 않고 자기 안에만 머무르게 한다면 거기는 썩어버리게 됩니다.
깨끗한 산소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피가 함께 모일 심장과 같은 구심점이 없다면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없고 나중에는 사람들에게 선교해도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만 있는 교회는 안에서 썩고 바오로만 있는 교회는 밖에서 썩습니다.
베드로가 약화하고 바오로만 강조된다면 아이는 낳고 키우지 못하는 무책임한 부모처럼 됩니다.
영화 ‘가버나움’은 자인이라는 아이가 부모를 고소하는 내용입니다.
가난하면서도 아이는 많이 낳아서 집세를 내기 위해 11살 딸을 시집보내버리고 자인은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교만 하면 무엇하겠습니까? 베드로를 통해 오는 은총이 메마르게 된다면 교회도 고소를 당하고 말 것입니다.
어쩌면 세례를 받고 5년 이내에 70%가 냉담 하는 상황이 이런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베드로와 바오로가 함께 머무는 균형 잡힌 교회와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주대학교 이국종 교수가 힘들어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돈이 중앙으로 집중되어야 한다는 기득권 의사들과 비교하면 그는 그런 것들이 외부로 나가는 데 더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에 있습니다.
지금 개신교가 겪는 어려움을 남의 일처럼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개신교가 왜 안 좋은 이미지가 되었을까요?
베드로와 바오로가 균형 잡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속으로는 돈이 집중되어 대형교회들이 세워지지만, 겉으로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소리치는
바오로의 모습만 비치기 때문입니다.
뉴스에는 계속 목사들이 수백억 원씩 착복했다는 내용이 나오고 신도들은 절에 가서 행패를 부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 교회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균형 잡히지 않는다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게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베드로 당시는 베드로 대성당이 없었습니다.
지을 생각도 할 수 없는 때이기도 했지만 사람이 교회였고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바오로 사도가 찾아왔습니다.
돈이 흐르는 곳에 복음도 흐릅니다.
심장만 커지고 혈관이 축소되면 몸이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심장입니다.
바오로는 혈관입니다.
돈은 혈액입니다.
적당한 심장과 알맞은 혈관의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혈관으로 교회에 들어왔던 재물은 사회로 환원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건강하게 살아남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오늘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를 함께 기념하게 만든 의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신앙인이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하려면 우리 안에 베드로와 바오로가 균형 잡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만약 예수님이라면 먼저 성당을 지셨을까, 학교를 지셨을까? 아마 학교를 지으셨을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선교를 먼저 생각하시는 것 같지만 분명 이 말씀 안에는 결국 성당을 지어 자신에게 주어진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균형 잡힌 신앙이 결국 많은 이들을 주님께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에 비해 지금의 우리 모습은 당연히 ‘성당 먼저’가 된 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성당을 짓고 났더니 돈이 부족하여 빚을 다 갚고 나면 이제 보수공사나 증축을 해야 하고 그렇게 밖으로 돌 수 있는 돈이 부족하게 됩니다.
그러나 심장 안에 피가 쌓여서는 안 되는 것처럼 교회는 끊임없이 가난해지려 해야 합니다.
대신 그 피는 선교의 방향으로 흘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교의 열매들은 다시 교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교회 건물이 조금은 더 작고 초라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때에 남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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