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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2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6-26 조회수 : 2501

‘나는 다르다.’라는 생각을 버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오늘 복음에서 믿음이 강한 백인 대장이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병을 고쳐 달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백인 대장의 믿음은 예수님까지 감동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종을 치유해 주겠으니 함께 가자고 할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런 믿음은 이스라엘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하시며 그를 칭찬해 주십니다. 
 
도대체 백인 대장은 어떻게 그러한 믿음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의 대답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예수님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지위와 힘이 있으니 하인들에게 무언가를 시켜 원하는 일을 이루어지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병을 고치는 힘이 있으신 분은 엄청난 지위가 있으신 분이 확실하니 자신은 그분을 집에 모실 자격이 없고 그런 힘이 있으신 분은 또한 누군가를 시켜 그 일을 하실 수 있으니 굳이 당신께서 직접 집에 오지 않으셔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는 이 세상 것으로 하늘의 법칙을 깨달아 믿음을 증가시킨 사람입니다. 
이것이 믿음을 증가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 세상의 법칙을 통해 하늘의 법칙에 다다르는 것입니다. 
 
2018년 1월 20일 새벽 일본 시가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의사가 되라는 엄마의 성화에 9년간 재수하던 딸이 엄마를 잔인하게 살해하여 시체까지 훼손하고 유기한 것입니다. 
그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습니다. 
“괴물을 처단했다. 이걸로 한시름 놓았다.”
 
노조미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의사가 돼라.’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성적이 모자란 그는 9년이나 재수해야 했습니다.
엄마는 지인들에게 딸이 이미 의대에 진학했다고 거짓말까지 하고 다녔습니다. 딸의 부담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엄마는 휴대전화까지 빼앗고 딸의 방에 CCTV까지 설치해 딸이 공부하는 것을 감시했고
심지어 샤워도 엄마와 함께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의사와 비슷한 모습인 ‘조산사’가 되겠다고 간호학과에 입학했는데 조산사가 아닌 간호사가 되겠다는 딸을 향해 “불행의 구렁텅이. 배신자!”라는 말을 쏟아냈습니다.
 
엄마는 대학을 나오지 않은 학벌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노조미는 처음에 징역 15년 형을 받았다가 사실을 참작해 10년 형을 받았습니다.
딸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한 일을 후회합니다. 하지만 포로 같았던 당시보다 지금 구치소 생활이 더 편합니다.”
 
   [출처: ‘의대 강요에 9년 재수한 딸’, 유튜브 채널, ‘엠빅뉴스’]
 
왜 믿음 이야기를 하다 이런 잔인한 사례를 드는 것일까요? 이런 사례들이 세계 곳곳에서 ‘똑같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고3 우등생이 어머니를 살해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도 ‘똑같이’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했고, 그 어머니도 열등감에 시달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영국에서도 있었습니다.
아들이 여러 일류대에 합격했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여자를 사귀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더 나아지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러며 장애 되는 것은 다 없애버려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아들에게 제거당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시킨 대로 걸림돌이 된 어머니를 제거한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례가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똑같이 일어나는데 왜 계속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나는 달라!’ 이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법칙에서 자신은 예외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법칙조차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법칙을 깨닫게 되면 그 법칙을 말씀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먼저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자세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부모가 빼앗고 있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대우와 존경을 받지 못할 때 무엇이 오겠습니까? 뿌린 대로 거둘 뿐입니다. 
이것은 법칙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다르다는 생각이 이 법칙도 보지 못하게 만들고 그런 법칙을 만드신 하느님도 믿지 못하여
결국 안 좋은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안 좋게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사례도 많습니다.
위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유태인들만 보아도 그렇게 자녀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자녀에게도 부모에게도
모두 유익하다는 것이 법칙으로 증명이 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일찌감치 주님께 봉헌하고 자신들은 노후 준비에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에 세계 최하위입니다. 계속 자식을 통해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려 하다가
돈도 다 쓰고 결국 자식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이 있습니다. 어디에나 법칙이 있습니다.
그 변함없는 법칙이 존재함을 볼 수 있다면 그 법칙을 말씀하시는 주님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백인 대장이 그렇게 믿음을 성장시켰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백인 대장처럼 ‘나는 달라.’, 혹은 ‘나는 특별해.’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나서 서로 판단을 하면서 그들은 특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포도밭의 한 그루 무화과나무의 비유처럼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다른 이들과 자신들은 구별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똑같습니다. 
우린 특별하지 않습니다.
이웃이 나도 모르게 판단이 된다면 그 판단하는 잘못이 무엇인지 찾고 그것이 내 안에도 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웃의 단점으로 나의 단점을 고치려 할 때 비로소 사람은 다 똑같고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세상에 존재하는 법칙들이 보이게 되고 그 법칙을 예수님께서 다 알려주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분을 믿게 됩니다.
 
우선 내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하느님 외에 인간은 누구도 특별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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