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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6-18 조회수 : 2785

내 안의 빛이 빛인지 어둠인지 구분하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눈은 몸의 등불이다.”라고 하시며,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라고도 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빛이 어둠일 수 있을까요? 
또 우리 안의 빛은 무엇을 말할까요?
 
빛은 바로 우리가 ‘바라는 마음’입니다. 바라는 마음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는 없습니다.
모기는 피를 바라고 사람은 재물을 바랍니다.
이 바라는 것은 ‘생존’과 관련되기에 살려면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는 것이 빛이 아니라 어둠일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 눈으로 드러납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것이 빛이 아니라 어둠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 ‘더 브레이브’(True Grit)는 14세 소녀 ‘매티’가 자신의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무법자 ‘톰 채니’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젊은 시절 악명 높았던 연방 보안관 ‘카그먼’을 고용해 그의 뒤를 쫓는 이야기입니다. 
 
매티는 어리지만 매우 똑똑하고 강한 의지와 정의감에 불타는 인물입니다.
매티는 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입니다.
영화 내내 매티는 사람들과 거래하고 계약을 맺고 변호사와 다른 상인들과 이야기를 하며 항상 법적 공평함을 따집니다. 
매티는 사기당하는 것을 극히 두려워해 철저히 자신의 몫을 챙기고 정의가 어긋나는 것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반면 그녀로부터 돈을 받고 아버지 살인범 톰 채니를 찾아주겠다는 카그먼은 그녀의 성격과는 정반대입니다.
돈을 받고도 톰 채니를 추격하는 대신 매티에게 집으로 돌아가라는 쪽지만 남기고 몰래 도망을 칩니다.
매티는 계약을 어긴 카그먼도 바로잡기 위해 그를 추격합니다. 
 
여기에서 성경의 상징적인 것이 나오는데 매티는 붉은 사과를 가방에 담고 검은 말을 타고 강을 건넙니다.
강은 삶의 어려움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검은 말은 삶의 동력입니다.
문제는 검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정의를 바로잡으려는 것이 빛이라고 여겼겠지만, 실상은 어둠으로 가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선악과를 먹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매티는 결국 톰 채니를 마주하게 되고 무방비상태인 그를 엽총으로 쏴서 정의를 실현합니다.
그런데 총의 반동으로 그녀도 뒤로 자빠지고 구덩이에 빠집니다. 
영화에서는 이를 그녀가 정의를 실현하려는 욕구로 여기까지 왔지만, 그것은 실상 빛이 아니고 어둠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해골들이 있고 뱀에 손까지 물립니다. 
 
카그먼은 매티와는 다르게 굳이 해주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합니다.
총으로 뱀을 쏴 죽이며 뱀에 물려 구덩이에 빠진 매티를 구해주는 것입니다.
뱀이 물은 손등에 십자표로 상처를 내고 독을 빼내 줍니다. 이것은 계약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자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사람을 미워할 수 있지만, 만약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하셨다면 우리는 영원히 뱀에 물린 채 어두운 동굴에 갇혀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참조: ‘더 브레이브’, 유튜브 채널, ‘영화 보는 강신부’]
 
 
이 영화에서 매티와 카그먼의 빛은 서로 다릅니다. 매티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빛이었습니다. 
빛은 삶을 살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그런데 매티의 빛은 실상 어둠이었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한쪽 팔이 잘린 상태가 되는데 이는 자비가 없는 정의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카그먼은 겉보기에는 술주정뱅이에다 계약을 어기는 사람이지만 누구든 피를 흘리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입니다. 
피는 피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의 어둠은 빛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것이 없으면 살 의미를 잃습니다. 
그렇게 나를 살게 만드는 힘이 ‘빛’입니다.
하지만 그 빛이 누군가의 피를 흘리게 만드는 것이라면 실제 그것은 ‘어둠’입니다.
그런 이의 눈빛은 어둡습니다. 
 
하지만 참 빛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시기 위해 오셨고 그 목적으로 사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어둠처럼 보이지만 그분의 빛이 참 빛이셨습니다. 
 
우리가 세속-육신-마귀의 욕구대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빛이 되겠지만 실제로는 어둠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둠에서 영원히 갇혀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라는 말씀의 연속입니다.
내가 세상의 보물을 추구하면 마음도 세상에 머뭅니다. 하지만 천상의 보물을 추구하면 마음도 하늘에 머뭅니다. 
 
참 빛은 남의 피를 흘리는 목적이 아니라 내 피를 이웃을 위해 흘리는 목적이어야 합니다.
양식이 되는 삶이고 그리스도가 되는 삶, 그리고 군고구마처럼 자신이 먹혀서 타인의 배를 불리는 삶입니다.
이럴 때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빛은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여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내 피를 흘려 누군가를 살리는 삶을 사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었다면 우리는 하늘에 보화를 또 하나 쌓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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