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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6-14 조회수 : 2603

우리도 한때는 악인이었다 
 
 
율법에는 눈을 다치게 하면 눈으로 배상하고 이를 다치게 하면 이로 배상해야 하는 동태복수법이 기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이 당한 것보다 더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오히려 가해자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강한 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개념을 더 확장해 악인에게 아예 맞서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대고 겉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속옷도 내주고 천 걸음을 가자고 하는 자에게는
이천 걸음을 가주고 꾸려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차라리 죽으라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어떻게 이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선 ‘악인’이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악인은 자신이 준 것이 없으면서도 많은 것은 나에게 요구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이 생기는 이유는 사랑을 받지 못해서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받으면 개중에는 선인으로 새로 태어날 이들이 존재합니다.
악인이 나에게 무언가 요구하는 것은 선인이 되려고 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런 악인에게 내 살과 피를 내어주지 못한다면 사실 나도 아직 악인일 뿐입니다.
나도 요구하는 수준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수준끼리 응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한때는 악인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요구하기만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법으로 우리를 대하셨다면 우리는 모두 지옥행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한없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우리가 오른뺨을 칠 때 왼뺨도 돌려대셨고 겉옷을 달라고 할 때 속옷도 주셨으며 천 걸음 가달라고 할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옆을 떠나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것에 감동하여 우리도 회개하고 타인에게 그런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제가 요즘 들은 이야기를 각색하여 소개하겠습니다.
한 신부님이 본당의 주일학교 교사 면담을 하던 중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 자매의 얼굴은 마치 지옥에 사는 사람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신부님은 농담조로 아직 젊은데 아이 하나 더 낳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정색하며 각방을 쓴 지 몇 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남편이 술만 마시면 폭력을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일학교에 다니는 어린 자녀가 있어서 그냥 참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자매의 남편은 어른 복사단의 일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자매는 형제가 집에서는 그러면서도 밖에서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심지어 제단에까지 올라가 봉사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그 자매에게 이와 같은 처방을 내렸습니다. 
 
1. 매일 성체조배 1시간, 묵주기도 5단을 남편을 위해 할 것
2. 남편을 볼 때마다 항상 웃고 하루에 칭찬 1가지씩 해 줄 것
3. 일주일에 한 번씩 남편을 위해 미사를 넣을 것
4. 하루에 한 번 남편과 가정을 위해 희생을 봉헌할 것
 
이혼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부님의 처방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마치 자신이 잘못해서 남편이 그러는 것처럼 자신을 질타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실천해 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며칠이 지났을 때 신부님은 이 모든 것을 잘 실천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자매는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몇 달 자매가 성당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은 미사가 끝나고 복사를 선 형제에게 요즘 아내가 왜 성당에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형제는 자신 아내가 지금 둘째를 가져 잠시 몸조리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얼마 뒤 둘은 팔짱을 끼고 신부님에게 인사를 왔습니다.
둘의 얼굴은 천국에 사는 사람들처럼 변해있었습니다. 
 
우리가 조건 없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도 악인일 때 누군가에게 한없는 자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인정한다면 내가 악인이라고 여기는 이에게도 조건 없는 사랑을 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이 의로움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서 매우 힘들 때 나도 예수님께 그랬음을 기억합시다.
내가 당하고 있는 것은 내가 예수님께 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K 베드로’라는 분이 쓴 『내가 죽인 예수』란 책이 있습니다. 그는 사형수였습니다.
그가 죽기 전 이웃과 친지들, 자신에게 신앙을 준 이들에게 쓴 100통의 편지를 모은 책입니다. 
 
그 사형수는 사람을 죽인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후 감옥 안에서 갈등과 방황과 혼란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시한부로 사는 것이 인생이지만, 사형수들은 오늘내일하며 벽에 걸린 수의를 바라보면서
아침저녁으로 아니 온종일 죽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사형수는 복음을 듣습니다.
예수를 믿고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원망과 분노의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았습니다.
모든 죄는 자기 탓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예수를 죽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죄와 허물 때문에 예수가 죽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죽음으로 자기가 살게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기가 죽음으로 예수로 살게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형수가 너무 변하자 교도관들은 그를 모범수로 대우하고 특별대우를 해 주려고 했으나, 그는 특혜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동료 죄수들을 날마다 섬기며 사형 집행되는 날까지 은총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모 형제와 친구들, 피해가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람들에게 참회의 편지와 감사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00통의 편지가 써졌고 『내가 죽인 예수』란 책이 출간된 것입니다.
그가 마지막 쓴 편지내용을 소개합니다.
 
“.... 오래지 않아 제 목이 밧줄에 걸리겠으나 지금 제 마음이 이렇게 행복감으로 충만한 것은 경이로운 믿음과 부활로 엉킨 단 하나의 소망이 아니겠는지요!
예수님처럼 나무 십자가 위에 달리는 극도의 고통을 겪는 것은 아니지만 파렴치한 사형수가 죽음을 앞두고 주님의 죽으심을 좀 더 가깝게 피부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자신이 악인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아직 참 신앙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혹은 내가 악인들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롭지 못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받은 만큼 내어주려는 마음이 인지상정입니다. 우리도 한때 악인이었음을 생각합시다.
그러면 내가 악인이라고 믿는 그 사람이 바로 나의 모습임을 보게 될 것이고 자비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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